핵심기술·부품사업으로 열상장비(TOD) 독자기술을 개발해 무기체계 전력화를 추진하는 6년여 동안 연구팀은 한손으로 적외선 광학계·주사장치·영상신호처리 등 핵심기술을 개발하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전력화에 필요한 각종 부수장비·지원장비·종합군수지원 요소 등의 개발과 관련 절차들을 준비해야 했다.

하나를 끝내기 전에 다른 하나를 시작해야 했고, 이들이 겹치고 얽혀 연구팀은 몇 가지를 동시에 병행 개발해야 했다. TOD 장비 개발을 마쳤을 때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도무지 정신이 없던 연구팀은 다시 핵심기술 영역으로 돌아와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재충전 시간을 가지면서 세계적 연구 추세를 살폈다. TOD 장비는 1세대 열상기술을 적용한 거의 마지막 장비. 선진국에서는 이미 주사방식의 2세대 열상기술이나 비주사방식의 3세대 열상기술로 발전하고 있었다.

열상장비는 감시장비뿐만 아니라 사격통제장비의 센서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오늘날 전투기·헬리콥터·함정·전차·장갑차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게 됐다. 최근에는 병사의 소총 위에 설치할 정도까지 응용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반면 열상장비는 가격이 비싸고 정비유지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따라서 수명주기 동안의 총 소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율적 정비유지체계를 고려해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열상장비를 개발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발 국가, 심지어 생산하는 회사마다 방법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특정 무기체계마다 다른 열상기술을 채택하게 되면 각기 상이한 정비·유지로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게 소요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공통모듈’(미니 해설 참조)이다.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 열상장비의 전력화 초기부터 이 공통모듈 개념을 적용했다. 헬리콥터·전차·장갑차 등에 소요되는 열상기술을 공통으로 채택, 동일한 부품을 사용토록 한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팀은 전방감시용 TOD를 개발하면서 이미 ‘열상장비 한국형 공통모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국내에서 개발하는 다양한 무기체계에 동일한 기술, 동일한 부품을 적용함으로써 수명주기간 소요비용을 절감코자 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새롭게 2, 3세대의 독창적 첨단 열상기술로 선진국과 본격적인 승부를 겨뤄보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연구진은 또 한번 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의욕을 불태웠다. 선진국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연구팀은 또다시 시간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서둘렀다. 무엇보다 우리 군이 원하는 시기에 핵심기술을 갖고 있어야 무기체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연구팀은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줌 방식 적외선 광학계의 연구부터 착수했다. 군사용 열상장비는 배율이 클수록 탐지능력이 좋기 때문에 고배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고배율은 상대적으로 시계(視界)가 매우 좁아져 주변 상황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모든 군용 열상장비는 광각의 저배율과 협각의 고배율이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되는 이중배율 구조를 갖는다. 국내 개발된 TOD 장비도 3배와 10배의 이중배율이다.

그런데 적외선 파장은 가시광선 파장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여러 배율로의 광학계 설계가 무척 까다롭다. 특히 고배율과 저배율의 비율이 크면 클수록 그 어려움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더욱이 군용장비는 매우 넓은 온도 범위에서 운용되므로 각각의 온도에 대해서도 보상돼야 하고 배율간 초점도 자동으로 일치되도록 설계돼야 한다.

또 열상장비를 헬리콥터 등 항공기에 탑재, 야간에 항행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초(超)광시계를 필요로 한다.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헬기 등에 열상장비를 탑재할 경우 1배율의 초광시계를 갖도록 별도의 광로(光路)를 설계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한된 일부 국가에서만 적외선 영역의 줌 광학계 설계 기술이 개발되고 있었다. 연구팀은 20배의 큰 줌 비율(zoom ratio)을 갖는 광학계 개발에 도전했다. 적외선 파장영역에서 1배율로부터 20배율까지 연속적으로 배율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광학계를 설계하려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에서만 구현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설계한 광학계는 모두 10매의 광학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3매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배율을 조정한다. 그런데 배율에 따라 조정되는 렌즈들의 궤적이 매우 비선형적인 데다 어떤 배율에서는 커브를 그려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할 때 순간적으로 배율 정보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곤 했다. 또 온도가 급격히 변화하거나 배율이 변화할 때 초점이 흐려지기 일쑤여서 운용자가 그때마다 일일이 초점을 조정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김창우·김현숙 선임연구원이 적외선 줌 광학계의 개발을 담당했다. 배율 변화를 담당하는 줌 대물부(對物部)와 수차 보정을 위한 렌즈군(群)을 기본적으로 구성하고 성능을 최적화하는 상세 설계를 진행하는 것은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연구원들을 힘들게 한 것은 ‘설계감각’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설계를 중간에 중단하고 퇴근하면 다음날 다시 설계감각을 되찾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때문에 한 단계 설계를 마칠 때까지 퇴근할 수 없었다. 야근은 매일 반복됐다.

수 개월의 연구 끝에 광학계 개발팀은 드디어 7매의 렌즈로 20배의 줌 비율을 갖는 적외선 광학계 설계에 성공했다. 단지 2매의 렌즈만을 선형적으로 움직여 1배에서 20배까지 연속적으로 배율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또 렌즈와 기구부의 열 팽창 등을 고려해 운용온도 범위 내에서도 언제나 일정한 초점이 유지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미소 주사기법(m icroscanning)을 사용, 영상 화소 수를 4배로 증가시켰다. 8만 개 미만의 검출소자로 30만 화소 이상의 세밀한 영상 획득을 가능케 한 것이다.


공통모듈 효과- 동일 정비체계로 유지비 대폭 절감

열상장비에 소요되는 핵심기술과 구성품을 일원화해 연구·개발하고 생산하는 방식이다(위에서 4번째 그림 참조). 최초 입증된 동일 기술을 사용하므로 다양한 무기체계에 적용할 때 개발기간과 예산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생산라인을 이용할 수 있어 생산비도 절감된다. 무엇보다 공통된 정비유지체계를 가짐으로써 정비유지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초반부터 공통모듈 방식을 채택, 전력화했고 영국·프랑스도 70년대 중반 이후 공통모듈 개념으로 개발해 80년대부터 전력화했다. 2, 3세대로 열상장비기술이 발전된 요즈음도 공통모듈 개념은 계속 유지·발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M1A2 전차에 사용되는 포수 및 전차장 조준경과 M2A3 장갑차에 사용되는 포수 및 전차장 조준경의 열상모듈은 동일한 기술과 핵심 구성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