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시대에는 지난 회에 소개한 수뢰포 외에 새로운 화약무기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대·중·소포다. 이 포는 흥선대원군이 거주했던 운현궁에서 제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흔히 대원군 대·중·소포라고 부른다.

이 대·중·소포는 우리나라 전통 화포류 중에 가장 완전한 포가(砲架)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화포의 포가는 단순히 화포를 올려 놓는 받침대나 운반수단이 아니라 화포의 성능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속 중 하나다.

화포를 발사하기 위해서는 고각(高角)과 편각(偏角)을 조절해야 하는데 포가가 합리적으로 설계돼야 각도 조절이 용이하다. 또한 화포를 쉽게 이동시킬 수 있게 하거나 발사 충격과 반동을 흡수하는 것도 모두 포가의 역할이다.

우리나라 화포의 전통적 포가는 동차(童車)다. 이 동차는 단순히 작은 나무상자에 소형바퀴가 달려 있을 뿐 고각과 편각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대원군 대·중·소포의 포가는 보다 진보된 방식이다.

이강칠(전 육군박물관장)박사는 “중·소포의 약실 아래 포가를 보면 암수 나사 형식으로 고각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고 좌우로 대형바퀴가 달려 편각 조절과 이동이 편리하다”고 평했다.

흥선대원군 시대의 국방정책과 군사제도·무기체계를 전공한 연갑수(서울시청 문화재관리팀장)박사는 “흥선대원군 시대에 개발된 대·중·소포는 포가뿐만 아니라 포신을 제조하는 주물기술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전통적인 조선의 화포와는 다른 매우 진보된 포”라고 말했다.

흥선대원군 시대의 다른 무기와 달리 대·중·소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주변국의 무기개발 동향에 관심이 많았던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서양화포 제조기술을 습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연박사는 “대원군 대·중·소포의 직접적인 기술적 원류는 알 수 없다. 흥선대원군 시대에 조선인이 외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기술을 직접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소포에 나타난 급격한 기술적 발전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대·중·소포는 조선왕조 자체의 기술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현재 대원군 대포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으며 중·소포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궁중유물전시관 소유 유물을 대여해 육군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1870년대에 제조된 대원군 대·중·소포는 우리나라 전통 화포류 중에서 가장 최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후 대한제국 시대에 외국기술을 직도입, 화포제작을 추진했으나 뚜렷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독립군과 광복군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소총·기관총이 고작이었을 뿐 화포류를 제작·보유하지 못했다.

광복 후 한국에서 최초로 대포를 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율곡사업 때의 일이다. 흥선대원군 시대에 마지막으로 화포를 국내에서 생산한 이후 다시 우리 손으로 현대적 대포를 만들기까지 100년의 공백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 100년이야말로 빈약한 기술력과 허술한 안보태세로 우리 민족이 온갖 수난을 당하던 시절이다. 대원군 대·중·소포는 그 100년의 공백을 상기시켜주는 상징적 무기인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12.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