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최초 잠항 시험에서 잠망경 연결 부위를 통해 바닷물이 머리 위로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긴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돌고래를 물 위로 부상시킨 승조원들의 침착한 행동과 능숙한 장비 조작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연구팀이 돌고래를 국내 개발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기술적인 문제 외에 꼽은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돌고래의 시운전에 참여할 승조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이었다. 해군은 이제까지 잠수함을 운용한 경험이 없었다.

따라서 돌고래를 진수한 뒤 안전한 해상 시운전을 위해 추진 시스템·조타 시스템·중량 조절 시스템 등 조종실의 각종 작동 장치에 대한 작동 절차 숙지, 각 시스템의 작동에 따른 소형 잠수함 반응에 대한 적응, 최초 잠항시 발생할지 모르는 함내 침수와 주요 시스템 고장 등 긴급 상황에 대한 대처 훈련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

하지만 잠수함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훈련을 실시할 수 없었고 해결 방안은 실제 돌고래 조종실의 작동 장치를 똑같이 만들어 육상에 설치, 조종 훈련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모의훈련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시뮬레이터는 제반 조종 장치의 작동 신호를 컴퓨터에서 받아 잠수함의 운동 특성을 계산한 후 속력·심도 변화 등 돌고래의 수중 기동 특성을 계기에 실시간으로 재현하면서 유압 장치를 통해 실제와 같이 움직이도록 하는 장비. 승조원들은 시뮬레이터 안에서 잠수함을 조종하는 것과 똑같이 피치(pitch)와 롤(roll) 등의 느낌을 갖고 조종 훈련을 할 수 있다.

사업 책임자 김영수 박사는 1981년 당시 어뢰개발실장 송준태 박사를 불러 돌고래 조종 훈련용 시뮬레이터 개발 계획을 수립·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어뢰개발실에는 어뢰와 같은 수중 운동체의 수중 운동을 모델링하고 운동 계수를 실험적·이론적으로 도출하는 운동 시뮬레이션 팀(서인준·기문현·안창범 연구원)이 있었기에 돌고래 시뮬레이터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개발은 기술적으로 아주 벅찬 과제였다. 대한항공(KAL)도 항공기 조종 시뮬레이터를 80년대 중반에 도입했을 만큼 당시로서는 시뮬레이터라는 말 자체가 익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소형 잠수함의 수중 운동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기술, 조종 장치로부터 수중 운동 특성을 아날로그 신호로 받아 디지털 컴퓨터로 계산한 후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전환해 보내는 하이브리드 컴퓨팅 기술, 이를 통해 소형 잠수함의 수중 운동을 실시간으로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기술, 조종실 각종 운항 작동 장치의 모델링 기술, 잠수함의 피치와 롤 운동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2축 유압 구동 장치 설계·제작 기술 등 당시 보유하고 있던 기술 수준이나 전문 인력 측면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과제의 난도(難度)도 난도지만 개발 초기에 부딪친 문제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조종 훈련용 시뮬레이터의 개발 필요성에 대한 관련 당사자의 반대 의견이었다.

당시 돌고래 건조 계약은 개산 계약으로 초기 계약시 조종 훈련용 시뮬레이터 개발·제작 비용(약 1억 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돌고래 건조를 맡은 코리아타코마는 비용 측면에서 시뮬레이터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또 돌고래 건조 감독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82년 1월 국방과학연구소에 파견된 해군 돌고래 승조원조차 돌고래 수중 운동 특성 숙지를 위한 조타 훈련은 실선(實船) 훈련으로 충분하며, 시뮬레이터에 의한 소형 잠수함의 수중 운동 특성을 실시간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이었다. “시뮬레이터가 없더라도 안전한 시운전을 보장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뮬레이터 개발팀은 국내 최초 실용 개발에 따른 운항 사고의 발생 가능성, 실선 훈련에서는 불가능한 사고 대처 훈련 필요성, 동일한 상황에서 반복 훈련을 통한 안전 운항 능력의 효율적 제고, 승조원의 교체시 체계적인 육상 조종 훈련 필요성 등을 강조하면서 관계자들을 설득해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팀은 먼저 하이브리드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당시 국내에서 개발 중인 어뢰 시스템의 육상 모의시험용으로 기 도입된 아날로그 컴퓨터(EAI-2000)의 기능을 확대하고, 이와 연계해 운용할 디지털 컴퓨터는 신규 구매를 통해 확보키로 했다. 또 유학 가기 위해 퇴직한 서인준·기문현 연구원의 자리를 박재환 연구원으로 보충하면서 안창범 연구원과 팀을 구성, 실시간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개발에 전념토록 했다.

돌고래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작동시 피치와 롤 운동을 실제와 같이 구현하기 위한 2축 유압 구동 장치도 중요한 분야. 어뢰실의 차상원 연구원으로 하여금 해군훈련단이 보유하고 있던 함포 사격 육상 훈련 장비를 참고, 김발 형식의 유압 장치로 개발토록 했다.

시뮬레이터 개발팀은 실제 잠수함 조종 경험이 없고 조종실 작동 장치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했으므로 해군에서 파견된 돌고래 승조원들로부터 조종실 작동 장치의 모델링에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다. 코리아타코마는 시뮬레이터의 선체 형상과 내부 조종 장치 제작을 맡았다.

시뮬레이터 개발의 가장 핵심적 요건은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실현하는 것으로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의 개발이 가장 핵심적 과제였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82년 1월 충원된 박재환 연구원을 해외에 파견, 하이브리드 프로그래밍 교육을 이수토록 하는 등 82년 말까지 아날로그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그러나 디지털 컴퓨터와의 통합은 디지털 컴퓨터의 외자 구매가 지연돼 83년 초가 돼서야 수행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83년 디지털 컴퓨터에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용 라이브러리를 설치하던 중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디지털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계산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메인 메모리 용량으로 128KB가 필요했으나 이미 신규로 확보된 디지털 컴퓨터의 메모리 용량은 96KB에 불과했다. 당시 외자 구매 절차에 따라 추가 구매하려면 최소 6개월이 소요됐다. 83년 7월로 계획된 승조원 훈련 일정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행이랄까, 연구팀이 백방으로 알아보던 가운데 컴퓨터 국내 대리점(오리콤)에의 문의를 통해 메모리 용량이 충분한 동일 장비를 국방과학연구소 1체계본부가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침 서울에 위치하던 1체계본부가 대전 지역으로 막 이사한 관계로 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장비를 대여, 하이브리드 컴퓨터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