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real time) 시뮬레이션을 위한 하이브리드 프로그램 개발은 1983년 7월 완료를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가 돌출했다. 안창범 연구원과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박재환 연구원이 3주간의 특례보충역 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82년 교육 이수를 위해 해외 출장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이 훈련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어 재차 연기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숙식하는 입영 훈련이 아니라 출퇴근이 허용되는 훈련이었다는 점이다. 박연구원은 매일 낮에는 훈련을 받고 밤에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컴퓨터에 의한 아날로그 컴퓨터의 실시간 제어 통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은 아날로그 프로그램과 달리 쉽게 개발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은 잘 되지 않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시뮬레이터 개발 책임자 송준태 박사의 고심은 깊어갔다. 연구팀에 분발하라고 재촉해서 해결될 일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침내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돌고래 시운전 일정에 맞춰 최종 프로그램 개발 마감일을 설정하고, 그때까지 해결이 안되면 하이브리드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아날로그 프로그램만으로 시뮬레이션 기능을 완성해 이를 토대로 승조원을 훈련시키기로 결정했다.

프로그램 개발팀은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안창범 연구원이 밤낮없이 매달리는 가운데 박연구원은 매일 군사 훈련을 끝낸 뒤 저녁에 연구소로 돌아와 연구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시간이라는 적과 싸우며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완성한 것은 마감일 새벽이었다.

한편 하이브리드 컴퓨팅 시스템 개발과 병행, 82년 하반기부터 진행해 온 시뮬레이터 훈련동(棟) 건설 공사 진척에 따라 내부에 장비를 설비하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3m의 크기를 가진 시뮬레이터를 구동하기 위해 만든 2m 깊이의 사각형 지하 구조물 안에 2축 유압 구동 장치를 설치했다.

시뮬레이터 외관은 돌고래의 압력 선체 형상을 본뜬 실린더 형태로 제작했으며 선미 방향의 수직 벽은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투명한 자재를 사용했지만 훈련 때는 두꺼운 커튼으로 차단, 실제 돌고래 조종실과 유사하도록 만들었다. 승조원을 훈련시키는 교관이 명령을 내리고 조종 훈련 내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명령 콘솔은 시뮬레이터 외부에 설치했다. 시뮬레이터가 설치된 조종 훈련실과 함께 하이브리드 컴퓨터를 설치할 컴퓨터실, 그리고 연구원이 작업하기 위한 연구실도 갖췄다.

그런데 시뮬레이터와 컴퓨터를 설치하고 컴퓨터와의 결합 시험을 수행하던 중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명령 신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시뮬레이터의 피치·롤 운동이 부드럽지 않고 불연속적으로 꿀렁거리는 혼팅(haunting)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었다. 마침 초빙 강의를 위해 연구소를 방문 중이던 미 해군의 잠수함 전문가 잭슨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유압 회로에 이상이 없음은 확인했으나 원인 규명에는 실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 사업을 중단시킬 뻔한 사고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2축 유압 구동 장치 개발 담당자인 차상원 연구원이 개발 책임자 송박사와 원인 규명에 대한 기술 협의를 마치고 이를 확인할 때였다. 유압 기기 제작업체 기술자와 함께 시뮬레이터 하부로 내려가 유압 실린더를 점검하던 중 갑자기 유압 실린더의 유압이 빠지면서 1톤 무게의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가 가로 방향으로 최대 롤(roll) 각도까지 쓰러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 차연구원과 제작업체 기술자가 앉아 있던 쪽은 선수부 방향이어서 전혀 다치지 않았다. 만일 시뮬레이터가 반대 방향으로 쓰러졌다면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것이다.

원인은 아날로그 컴퓨터의 편류(drift) 현상으로 인한 명령 신호의 변화와 유압 배관의 진동 탓에 배선용 터미널 블록의 접촉 불량이었다. 경험 부족 또한 지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 특성을 고려한 안전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못했고 시뮬레이터 제작 비용 절감을 위해 신뢰도가 낮은 저가 부품을 사용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83년 6월 송박사는 돌고래 함장 이홍희(현 해군 조함단장) 소령과 시운전 담당자(이헌곤 연구원)와 자리를 함께했다. 훈련 일정을 합의하기 위함이었다. 7월18일부터 시작되는 돌고래 공식 시운전 일정에 맞춰 6월28일~7월14일 가운데 9일간 훈련키로 했다.

과목은 심도·침로·트림 조종 훈련, 부상 훈련, 기뢰 부설 훈련 등 총 40개. 교육 훈련자가 명령 콘솔을 통해 심도 변경이나 침로 변경에 대한 명령을 내리면 승조원이 조종 장치를 작동, 주어진 시간 내에 명령한대로 돌고래를 조종하는 것이다.

훈련에 들어가자 돌고래 승조원들은 선수부 수평타를 사용, 미세하게 심도를 변경하는 데 익숙한 솜씨를 보였다. 반면 고속에서 선미부 수평타를 사용, 큰 심도를 조종하는 데에는 다소 미숙함을 보였다. 비록 시뮬레이터의 계기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지만 승조원 대부분이 여러 번 돌고래를 수면이나 해저에 충돌시키곤 했다. 이때 일부 승조원은 시뮬레이터가 실제 돌고래의 수중 운동 특성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해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조원들의 역량은 뛰어났다. 5일 정도 훈련이 진행되면서는 어떤 과제를 부여해도 신속하고 안전하게 돌고래를 조종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위급 상태를 빨리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 등도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7월18일부터 시작된 시운전에서 돌고래는 모두 기대한 대로 아무 사고 없이 운항됐으며 특히 7월28일부터 4일간 실시된 기동성 시험에서는 돌고래의 수중 운동 특성이 시뮬레이션을 위해 연구팀이 작성한 운동 특성 예측치와 큰 오차가 없음이 확인됐다. 이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꼭 맞는다는 보장이 없어 조마조마하던 개발팀에 아주 값진 소득이었다. 공식 시운전이 끝난 뒤 함장을 비롯한 승조원들은 시뮬레이터 개발팀에 감사의 뜻을 전해 왔다. 송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국방과학연구소 진해연구소(현 2체계개발본부)는 해군의 요청에 따라 83년 10월부터 시뮬레이터를 이용, 승조원 교체시마다 조종 훈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했으며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던 해군의 잠수함 승조원을 양성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됐다.

한편 돌고래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분야는 조직 개편을 통해 박성희·임경식·이동권·최중락 박사 등으로 연구 책임자가 여러 차례 바뀌었고 90년부터 94년까지 유사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새로운 조종 훈련 장비를 제작·설치했다. 구동 장치는 2축에서 6축으로, 아날로그 컴퓨터는 디지털 병렬 컴퓨터로, 조종 콘솔은 2인 제어에서 1인 제어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돌고래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 개발은 황무지에 가까웠던 국내 시뮬레이터 관련 기술을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술적 기반을 닦고 다른 무기 체계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해군 209급 잠수함 조종 훈련 시뮬레이터를 국내 기술 능력으로 충분히 개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발 대신 해외 도입으로 결정된 것은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연구팀에 남아 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