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공군 저속통제기 KO-1’은 국방과학연구소가 공군 조종사 양성을 목적으로 1988년부터 98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개발에 성공, 실전 배치한 공군 기본 훈련기 KT-1에 공군의 전술 통제 임무를 부여한 항공기다. 99년 4월 ‘KT-1 저속 통제기 체계 개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에 착수, 지난해 7월 합참으로부터 전투 사용 가 판정을 받았다. 본지는 이 기획 연재 시리즈 1회로서 KT-1 개발 비화를 2001년 10월31일부터 17회에 걸쳐 게재한 바 있다. 〈편집자〉


"훈련기나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기본훈련기 KT-1 후속사업으로 개발 착수 주익 아래에 연료탱크 로켓발사관 등 장착1996년 초가을, 한국 최초의 독자적인 항공기가 될 KT-1 개발에 나선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 연구진은 이 항공기의 개발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도 낙관하지 못했다. 항공기 개발 가능성을 확인하는 선행개발(현재는 선행개발과 실용개발을 나누지 않고 체계개발이라고 한다) 단계를 마친 후 공군이 5개월 여에 걸쳐 실시한 시험평가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공군전투발전단장 이한호(李漢鎬 현 공군참모총장) 장군은 시험평가 결과 보고서를 세심히 검토했다. 공군이 제시한 155개 항목 기준에 ‘충족’ ‘미충족’ ‘조건부’ 등이 뒤섞여 있었다. 이장군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선행개발에 대한 합격 여부를 판정해야 했다. 불합격이라면 실용개발 단계에 돌입하기는커녕 사업 그 자체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판이었다.

“훈련기나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장군의 한마디에 현역 대령으로 국과연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이대열(李大烈) 박사는 잔뜩 긴장했다. 무슨 뜻일까. 설혹 이장군이 ‘불합격’ 판정을 내린다 해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입장인 상태. 그러나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장군이 KT-1 선행개발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음에도 실용개발로 가도 좋다는 승인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신 이장군은 조건을 달았다. 저속통제기(전술통제기) 사업은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즉, 국과연이 KT-1이라는 공군 기본훈련기를 개발하는 사업은 최초 기본훈련기와 저속통제기를 함께 개발하는 ‘훈련지원기 사업’으로 출발한 것인데, 여기에서 저속통제기 부분은 사업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한 후 별도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국과연의 개발 실패에 대비, 공군은 저속통제기로 쓸 항공기를 외국에서 도입하는 사업을 내부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었다.

돌이켜 볼 때 이 당시 이장군의 ‘승인 판정’이라는 선택은 공군 전력의 안정적 확보 측면에서 공군은 물론 본인에게도 큰 부담일 수도 있었지만 국과연 연구진에는 최선의 배려였다. 승인 자체가 국과연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것이기도 하지만 “훈련기나…”라는 말에는 두 가지 항공기를 함께 개발해야 하는 연구진에 하나의 짐을 덜어 주는 따스함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이장군의 ‘혜안이자 용단’(이대열 박사)이었다. 이장군의 승인 판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세계에서 동급 최고 성능 항공기로서, 또 ‘건국 후 민간·군수 과학 기술 50가지 업적’(1998년 조선일보 선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 KT-1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97년 중반, 국과연은 기본훈련기 KTX-1의 실용개발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 후속 사업으로 저속통제기 개발을 위한 준비를 착착 밟아 나갔다. 사용 군(軍)인 공군과 사전 협의를 통해 저속통제기 개발 요구 조건을 결정하고 이에 필요한 개발 예산을 국방 중기 계획에 반영해야 했던 것이다.

공군 등 관련 기관과 수 차례 협의를 거쳐 개발 요구 조건이 구체화되고 98년 3월 합동참모본부에서 저속통제기의 운용 요구가 확정됐다. 이를 개략적으로 보면 기본훈련기 KT-1의 외형을 기반으로 주익 아래에 파일론, 로켓 발사관(LAU-131), 외부 연료탱크 등의 외부 장착물을 장착하고 무장 제어 계통과 야시계기 시스템(NVIS)을 새로 개발하며 자동 러더 트림 장치 등을 국산화한다는 내용이다.

99년 2월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킬 세부 개발 요구 조건들이 포함된 체계 개발 동의서(LOA)가 공군과 국과연 간에 서명, 확정됐다. 이렇듯 기본훈련기 KT-1의 개발 성공(98년)에 이어 연속적으로 또 하나의 항공기 ‘저속통제기 XKO-1’ 개발을 진행할 여건이 조성됐다. 적어도 99년 4월, 공식적으로 사업이 출범할 때까지 마치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XKO-1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데에는 1년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저속통제기-전투기의 지상 표적 공격 유도 임무

공군의 임무를 보면 적의 공중 도발에 대처하기 위한 제공 작전과 적의 지상 목표를 공격하기 위한 근접 지원 작전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근접 지원 작전의 경우 전투기 단독으로 수행하지 않고 전술통제기라는 전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F-16·F-4와 같이 고속으로 비행하는 제트기가 지상에서 기동하는 차량과 소규모 병력과 같은 표적을 획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는 현재보다 저속의 제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T-6를 개조한 ‘모스키토’(본면 ‘무기의 일생’ 13회 참조)를 활용, 백포(WP) 표시 로켓을 사용해 공격 항공기에 표적을 알려 주었으며 이런 유형의 방법은 현대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지난 걸프전에서도 쓰인 바 있다.

물론 미군은 표적을 전투기에 지시·통제하는 방법으로 합동 표적 공격 레이더 시스템(Joint STARS)과 공중 전장 지휘통제 본부를 활용하는 등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으나 근접 항공 지원에서 전투기를 표적으로 유도하고 아군 상호 간의 공격을 예방하는 것은 여전히 지상 또는 공중의 전방 항공 통제관(FAC)의 임무로 인식되고 있다. 전투기가 1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표적을 식별할 수 없다면 6km 이상의 사거리를 지닌 미사일도 소용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전투기가 지상 목표를 공격하기 앞서 작전 지역을 정찰, 전투기가 목표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도록 지원(지휘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항공기가 저속(low speed)통제기(전술통제기)다. 이 항공기는 로켓 등으로 무장도 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산악 지형에서는 적 지상 병력에 대해 효과적인 공격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 공군은 이 같은 전술 통제용 항공기로 70년대 O-2A를 도입·운용해 왔다. 아직도 운용 중인 이 항공기는 30년 가량 임무를 수행한 만큼 기체가 노후화돼 수명을 거의 다한 상태. 따라서 80년 말부터 O-2A를 대신할 새로운 전술통제용 항공기를 도입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