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훈련기 KTX-1는 공군 주관의 시험평가를 거쳐 1998년 11월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전투 사용 가(可)’ 판정을 받음으로써 시험·시제(試製)를 의미하는 ‘X’(experimental)를 떼어내고 KT-1으로서 공군에 전력화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항공기 개발팀에 여기저기서 축하의 인사가 쇄도했지만 정작 개발팀 당사자들은 잠시 그 기쁨을 느꼈을 뿐 긍지와 자부심만 가슴에 담아 두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이제 후속 사업이 될 저속통제기 XKO-1 개발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국과연은 XKO-1 개발을 위해 KTX-1 구조실장을 맡았던 한영명(현 정책실장) 박사를 사업 책임자에, 체계설계팀장(현 항공기사업부장)에 이대열 박사 등 사업 부서를 구성했다. 이들 연구개발팀은 개발 기간을 총 4년으로 설정, 개발 계획을 면밀히 수립했다.
그리고 XKO-1의 시제기는 기존 KT-1 기본훈련기 사업 때 시제기로 개발된 04호기·05호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05호기는 시스템 성능과 무장 발사 성능을 입증하는 데, 04호기는 외부 장착물이 추가된 형상에 대한 비행 성능 검증에 사용토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공군이 요구하는 제원·성능에 맞도록 내외부를 개조하는 구조 설계부터 진행해 나갔다.

동시에 연구개발팀은 예산 승인을 받기 위해 국방부의 여러 관련 부서를 분주히 방문, 사업 계획의 적절성을 설명한 결과 마침내 1999년 4월 사업 승인이 국과연으로 하달돼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하게 됐다.

그런데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사업 승인이 내려져 연구팀은 XKO-1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을 가속화해야 할 이때 국방부에서 전혀 뜻밖의, 전혀 예기치 않은 지시가 떨어졌다. 개발 예산에 대한 세부적인 비용 분석을 추가적으로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사업 예산은 이미 검토 과정에서 처음 제출한 규모보다 부분적으로 삭감된 상태. 350억 원에서 337억 원으로 줄어들었는데 그렇게 확정된 예산에 대해 검토하라는 것은 추가적으로 더 삭감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엄청난 난관이자 고비. 연구팀은 사업 추진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것을 우려 속에 곧바로 국방부와 국방연구원의 비용분석팀에 개발비의 타당성에 대해 수 차례 설명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문제는 ‘프라이스’(Price). 이것은 미국에서 개발, 우리나라에 갓 도입된 무기 체계 개발비 산정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국방연구원에 설치될 때 국과연의 관계 연구진이 사용법 등을 가르쳐 준 바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의해 개발비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첫 경우가 하필이면 바로 XKO-1 의 개발비였다.

국방연구원 분석팀은 프라이스를 이용해 XKO-1 개발비를 산정한 결과 국과연이 제시한 개발비가 과다하게 책정됐고, 한편으로 개발에 투입되는 세부 요소를 근간으로 산출해도 예산은 과다하다는 주장을 폈다.

프라이스의 특징을 익히 알고 있었던 이박사는 이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프라이스는 각종 파라미터 입력 자료 값에 따라 엄청난 결과 편차를 나타낸다. 분석하는 측에서 개발 기술의 난이도를 낮게 평가해 입력하면 결국 개발비가 적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박사는 프로그램의 구성 요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우리 실정에 맞는 자료를 입력해야만 신뢰성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며 단기간에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사업비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연구원 분석팀은) 설계가 막 시작되는 형상에 대한 세부적인 부품 구입비 산출을 요구해 오기도 했는데 설명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허탈했고 또 연구개발자로서의 자존심도 무척 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 청출어람이라는 고사성어가 맞는 것인지, 발목 잡혔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이대열 박사)

연구팀은 여섯 달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추가적으로 55억 원의 예산 삭감이라는 부담을 안고 사업에 들어가 99년 12월 말 업체와 시제 계약을 체결했다. 총 4년의 사업 기간 중 거의 1년을 소비한 후에야 계약이 이뤄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일정이 대부분 빠듯하게 짜여지는 점을 감안한다면 단 하루도 금쪽 같은 시간인데 1년이라는 기간은 연구팀에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다행스럽게도 개발 사업 후반기에 들어선 2001년 6월 사업 진행 중간 보고 중 국방연구원의 비용 분석이 무리였음이 증명돼 이때 비용 분석 탓에 사업 착수 시기가 지연된 6개월에 대한 기간 연장 승인과 함께 예산도 38억 원 증액됐다. 당시 연구개발팀이 알게 모르게 입었던 자존심도 다소 회복하는 계기도 됐다.


◆ KT-1의 시제기들-02호기는 전쟁기념관 전시 03~05호기 시험용에 활용

국방과학연구소는 KT-1을 개발 완료하기까지 모두 5대의 시제기를 제작, 순차적으로 KTX-1 01, 02, 03, 04, 05호기로 명명했다.
01호기부터 02호기까지는 550마력급 엔진을 탑재했다. 다만 03호기 이후부터 국방부와 공군이 KT-1을 1000마력급으로 개발한다는 결정에 따라 1100마력 엔진을 도입, 이를 950마력으로 출력 제한해 탑재했다. 이로 인해 기체의 주날개·꼬리날개의 위치와 상반각 등 형상이 일부 변경됐고 이는 04, 05호기로 이어졌다.

특히 실용 개발 단계의 시제기인 05호기는 KT-1 양산을 위한 기본형으로 제작돼 KT-1과 동일한 제원과 성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재는 저속통제기 형상으로 성능 개량된 형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01호기는 KT-1에 대한 대통령 명명식 사흘 전인 95년 11월22일 오후 2시쯤 비행 연습 중 추락했다. 현재 02호기는 서울 전쟁기념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돼 있으며 05호기를 비롯한 03, 04호기는 국과연이 향후 수행할 예정인 저속통제기 KO-1의 성능 개량과 항공 장비의 시험 플랫폼으로 서산비행장에 있는 국과연 제5시험장에서 계속 운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