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9일 뜨거운 한여름에 04호기가 드디어 초도 비행에 나섰다. 너무 익숙한 항공기이기 때문에 이날 전까지만 해도 초도 비행이 실감 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항공기 개발과 시험이 대부분 그렇듯 이날 초도 비행은 항공기 기체에 외부 장착물을 단 최초의 비행. 10여 년 전 KTX - 1 01호기가 초도 비행할 때만큼은 아니어도 활주로에 들어서는 04호기의 모습은 초도 비행이 주는 긴장감을 연구원 모두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스컹스 워크스의 전설을 이끌었던 존 켈리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기적으로 항공기 후방석에 탑승해 비행의 공포를 느끼곤 했다는데 그 느낌이 ‘살아 있는’ 항공기 개발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초도 비행에서 연구진이 갖는 긴장감에는 기술과 성능의 확인 외에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김명성 공력팀장)

연구원들은 돌발 상황이나 비상 상황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활주로 저편의 04호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최대 출력의 엔진 소리가 들리면서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있을 조종사의 발 느낌이 연구팀에 전해지는가 싶더니 04호기는 이내 퉁겨 나가듯 활주를 시작했다.

조종간을 당겨 기수를 들기까지 불과 몇 초 안 되는 그 시간이 연구팀에는 왜 그리 긴 것일까. ‘제시한 속도에서 조종간을 제대로 당기는 걸까’ ‘의도한 대로 기수가 들려질까, 혹시 과도하게 기수를 들지는 않을까’하는, 안 해도 되는 생각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 사이 04호기는 사뿐히 떠올라 약속된 고도와 활주로 위치에서 상승 선회하며 기지를 빠져 나갔다. 실시간(real time)으로 비행 상황이 전해지는 비행계측실의 스크린은 04호기의 비행 궤적 선과 고도가 빨갛게 나타나며 04호기가 무사히 이륙 영역을 벗어났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초도 비행을 지켜보는 많은 연구원 가운데 공력팀은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10분이나 지났을까. 04호기가 이륙,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질 즈음 04호기를 따라 비행하던 체이서(03호기)에서 보내오는 교신이 날벼락처럼 들려왔다. 파일론과 외부 연료 탱크 사이에서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외부 장착물을 담당한 최관호 연구원은 일순 얼굴이 사색이 되며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담당자가 누구얏!”

사업 책임자 한영명(현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실장) 박사의 고함이 쩌렁 울렸다. 하지만 그 고함이 귀에 들릴 리가 만무했다. 최연구원은 어느새 비행 중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행 전 외부 연료 탱크 설계 담당자와 정비 요원이 점검을 철저히 했는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파일론과 외부 연료 탱크에서 물이 뿜어 져 나온다는 것은 배관을 연결하는 두 개의 배관 장착용 구멍이 열려 있다는 것과 비행 고도가 높아지면서 압력으로 인해 이 열린 연료 배관을 통해 물이 분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연구원은 가슴을 치고 말았다. 몇 년을 준비했는데 단순한 실수 때문에 첫 비행이 엉망이 되다니….

“일반적으로 외부 연료 탱크의 연료를 내부 연료 탱크로 이송하는 연료 배관을 파일론에 장착하는데 초도 비행에서는 기능적인 면을 제외했기 때문에 이를 장착하지 않은 거죠. 비행 전 점검 때 부품 하나 하나를 철저히 점검했지만 정작 총 조립 상태를 살피는 일을 잠시 놓친 겁니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최관호 연구원)

30분 후 04호기는 기지 활주로에 안착했다. 조종간을 잡았던 공군52전대 강철 소령은 공력팀을 대하자마자 “공력팀의 비행 성능 예측이 상당히 잘 맞던데요”하며 빙긋 미소 지어 보였다. 공력팀은 이 한마디로 한여름 무덥고 고생스러웠던 기억을 모두 지울 수 있었다.

한편 외부 연료 탱크를 담당한 3팀은 시제 업체에 가 그곳 연구원·기술 사원과 함께 주말과 광복절 휴일을 반납하면서 오류 부분을 수정한 뒤 비행 시험에 다시 참여할 수 있었다. 그 후 최종 형상의 저속통제기용 외부 연료 탱크와 파일론이 개발 완료돼 항공기에 장착될 때까지 수정 외부 장착물들은 약 1년간 비행 시험에 투입, 공력·비력 자료 수집에 활용됐다.

연구진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바람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의 이러한 작은 실수들이 모여 양산 또는 전력화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게 마련이다.

최연구원은 그 끔찍했던 날을 다시 떠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사업 책임자 한박사는 그때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하며 위로했다.

“이런 문제도 없으면 나중에 국방일보 개발 비화가 재미없잖아.”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