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30일 남미 대륙 끝 부분의 마젤란 해협에서 480km 떨어진 포클랜드 제도의 남쪽으로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들이 영국 해군의 핵잠수함 콩커러(HMS Conqueror)함에 포착됐다. 순양함 제너럴 벨그라노(General Belgrano)함을 비롯해 두 척의 구축함, 그리고 한 척의 급유함이 이동 중이었던 것이다.

1833년 영국 해군이 최초 점령한 이래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영국·아르헨티나 간의 영유권 문제는 4월2일 끝내 군사적인 해결 방식, 이른바 포클랜드 전쟁으로 치닫고 말았다.

4월23일 영국이 포클랜드를 중심으로 반경 200마일의 배타적 수역을 선포하자 아르헨티나는 그 첫 대응으로 항공모함과 순양함·구축함·호위함 등을 포클랜드 해역으로 출동시켰다.

그중 벨그라노는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마뉴엘 벨그라노의 이름을 따 명명한 1만3000여 톤(만재 톤수)의 순양함(지난 4일 진수한 우리 해군의 최대 전투함인 KDX-2 왕건함은 경하 톤수로 4200톤급)이다.

콩커러함은 이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가운데 함장은 런던으로부터 이들 함정에 대한 공격 승인을 받아내고 공격할 무장을 준비하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5월2일 오후 7시쯤 잠수함과 목표물 벨그라노와의 거리는 약 13㎞. 이 정도면 굳이 정확도가 높은 최신 어뢰 타이거 피시를 쓸 필요까지는 없을 터. 제2차 세계대전 때처럼 무유도 방식의 구식 직진 어뢰를 발사, 두 발이 벨그라노 함체를 정확히 타격했다.

약 45분 후 1만3000여 톤의 거대한 순양함이 단 두 발의 어뢰에 신음하며 깊은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1000여 명의 승조원 가운데 368명도 죽음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이 전투 이후 아르헨티나 해군 함정들은 포클랜드 근해에 거의 얼씬거리지 못하고 그들의 연안에서 머물러야 했으며 결국 6월14일 영국의 승전으로 전쟁을 마감했다.

옛 소련의 스틱스 미사일에 의해 이스라엘 구축함이 나가떨어진 예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해전이나 다름없는 이 전투는 잠수함의 위력, 특히 기본 무장으로 빼놓을 수 없는 어뢰의 위력을 유감 없이 보여준 전례가 됐다.

1999년 4월25일 우리 해군의 209급 잠수함 이천함(李阡艦)은 99서태평양 훈련에 참가, 어뢰 한 발을 발사한다. 평소 표적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어 우리 해역에서 어뢰를 실제 사격할 수 있는 훈련이 드물었던 해군으로서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표적은 1만679톤의 미국 퇴역 순양함 오클라호마시티함. 이미 미군의 공대함 미사일 매버릭 두 발을 얻어맞고도 끄떡 없는 상태였다. 이날 이천함에서 발사된 독일제 중어뢰 수트(SUT)는 8㎞ 거리의 바다 속을 질주, 오클라호마시티함 밑 부분에서 폭발하며 거대한 물기둥을 솟구쳐 올렸다. 동시에 오클라호마시티함의 함체는 두 동강 난 채 수장됐다.

어뢰란 이렇듯 적함에 전투력 상실 정도의 타격이 아닌 아예 흔적조차 없애 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무기 체계. 일반적으로 중어뢰라면 1만톤급 이하의 순양함과 구축함은 단 한 발, 러시아의 민스크급 항공모함은 네 발, 미국의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은 여덟 발이면 격침이 가능할 정도로 파괴력이 엄청나다.

어뢰의 본명은 어형수뢰(魚形水雷), 영어로는 토피도(torpedo). 그 위력을 미리 상상이라도 하라는 의미에서인지 이름에 ‘번개’가 포함됐듯이 영어의 어원도 ‘간담을 서늘케 하다’라는 라틴어 ‘torpere’에서 유래됐다.

어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60년대 초.

19세기 들어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함포에 대한 방어책의 일환으로 목선의 흘수선(吃水線)까지 철판을 둘러친 철갑 함선을 출현시켰다. 이에 따라 창과 방패의 관계처럼 이 철판을 무력화하기 위해 함과 함포의 규모는 거대화됐고 철판의 두께도 더욱 두꺼워지는 가운데 함포는 무게가 100톤이 넘는 것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떤 대포도 한 방에 상대의 철갑 함선을 격침할 수는 없었다.

이때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어뢰였다. 장갑으로 벨트를 두른 함선에 방어되지 않는 곳은 흘수선 아래 부분뿐이었다. 이 아래 부분의 약점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어뢰가 발상된 것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미국 남북 전쟁 때 포터 제독은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전속력으로 전진해 어뢰로 적함을 공격하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말 속을 들여다보면 당시 어뢰는 자주(自主) 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때의 원시적인 어뢰는 투척하거나 발사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함정은 어뢰를 안고 적함으로 돌진, 공격했음을 말해 준다. 추진 장치 없이 간단한 기폭 장치로 돼 있어 오늘날의 어뢰라기보다 기뢰(機雷)라고 하는 것이 옳을 정도였다.

긴 원통 모양의 초기 어뢰는 나무통에 방수 처리된 폭약을 넣은 어뢰로 발전하고 이를 싣고 다니는 작은 배도 등장했다(이것이 특별히 어뢰를 전문 탑재, 공격하는 오늘날 어뢰정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뢰를 실은 이 작은 배는 적의 관측을 피해 적함에 접근, 흘수선 밑을 공격했다.

1869년 영국 해군의 하베이라는 함장은 새로운 모양의 어뢰를 만들었다. 물고기 모양의 용기 안에 폭약을 가득 넣은 다음 이것을 긴 끈에 매달아 다니는 인양식 어뢰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어뢰를 여러 개 끌고 다니면서 적함을 공격하고자 하는 발상이었으나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많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모두 폐기해야 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