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1년 미국의 육·해군은 합동으로 일련의 시범을 준비한다. 워싱턴 조약에 따라 폐기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전함 몇 척을 항공기로 공격해 보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항공기의 공격 능력을 보여 주겠다는 것으로 전함은 초대형 폭탄을 얻어맞고 기울기 시작했으나 처음에는 대형 폭탄에도 상처만 입었을 뿐 침몰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 무렵 영국은 독자적으로 역시 낡은 독일 군함에 대해 폭탄으로 격침하는 시험을 가졌지만 이번에도 영국 폭격기는 군함에 결정적인 피해를 주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항공기가 공격 무기로서 역할하기에 성능이 아직 미흡하다는 생각이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항공기에 탑재해 장갑화한 군함을 공격할 만한 무기가 없기 때문일 뿐이라며 기존의 폭탄 대신 어뢰를 탑재하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하기에 이른다. 어뢰를 실은 폭격기가 물 위를 낮게 날면서 어뢰를 떨어뜨리면 어뢰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물속을 항진, 수중의 적 함체에 명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1940년 7월 워스파이트함 등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 함대는 이탈리아 해군 2개 전단과 조우, 해상에서는 이탈리아 해군을 쫓고 육지에 근접하면 이탈리아 공군에 쫓기게 된다. 영국 함대는 적 항공기의 이 같은 위협이 반대로 적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탈리아의 타란토 해군 기지도 항공기 공격에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항공모함 일러스티리어스함을 출동시켜 21대의 낡은 복엽기 소드피시(swordfish)로 하여금 타란토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소드피시에는 어뢰가 실려 있었다. 이탈리아 신형 전함 리토리오함이 세 발의 어뢰를 맞는 등 군함 수 척이 피해를 입으며 타란토 기지는 쑥대밭이 돼 버렸다. 소드피시는 2대가 추락했지만 항공기가 공격 무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어뢰가 공중 공격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이같이 소드피시처럼 어뢰를 탑재한 항공기, 즉 뇌격기(torpedo aircraft)를 통해 함정을 대파하는 전례를 주의 깊게 관찰, 마침내 1941년 12월7일 하와이의 진주만 공습에 적용한다. 이때 폭격기에서 투하된 장갑관통 폭탄에 적지 않은 군함이 크게 당했지만 결정적으로 많은 피해를 준 것은 뇌격기요, 어뢰였다.

이어 12월10일 일본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있는 기지에서 뇌격기를 출격시켜 영국 함대를 공격, 웨일스함·리펄스함을 격침한다. 위세를 떨치던 영국 극동 함대는 뇌격기와 어뢰의 공격에 단 2시간 만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어뢰의 활용도가 공중 공격으로 넓어진 가운데 폭발력 등 어뢰의 자체 성능도 발전을 거듭했지만 운용 요원에게 확고한 신뢰를 주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명중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일례로 독일은 기존의 공기 압축 추진형인 G7을 전기 모터 추진식으로 변경, 시속 30노트로 6㎞ 이상 공격 가능한 G7e로 업그레이드했으나 1940년 노르웨이 침공 작전 결과 적어도 25% 이상이 어뢰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비단 잠수함에서의 조준에 의존하는 무유도 방식의 직주형 어뢰였던 까닭만은 아니다. G7e는 뇌관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어뢰 시험장과 실제 사용 해역 간의 위도 차이, 해양 조건의 상이점, 자기 기뢰에 대응하기 위한 소자 장비의 방해 등이 원인이었다. 바다는 어뢰를 운용하는 해군에나 연구 개발자에게나 모두 예상하기 어려운 많은 변수를 주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임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독일은 1942년까지 이 G7e 어뢰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어뢰를 계속 사용하는 가운데 1943년 전혀 새로운 어뢰를 선보인다.

어뢰 전면에 장착된 두 개의 지향성 음향 탐지기가 함선 프로펠러에서 나는 소음을 추적하도록 설계된 최초의 음향 호밍 어뢰인 T-5 GNAT(German Naval Acoustic Torpedo)라는 첨단 어뢰를 개발했다. 더욱이 이 어뢰는 목표물을 직격하면서 폭발시키는 접촉(충격) 신관을 쓴 어뢰와 달리 이른바 근접 신관을 채택, 독일 해군이 자부할 만큼 가히 첨단이었다.

하지만 이 어뢰 역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리에 민감한 탓에 발사 초기 음향 추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발사 잠수함을 향해 달려들거나 간혹 항주를 예측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실제 발사 어뢰 610발 중 3분의 1만이 목표물에 접촉한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1941년 독일 잠수함 U-570을 나포하면서 탑재된 독일의 G7e 어뢰를 입수, 6개월 만에 Mk18 어뢰를 등장시켜 일본의 함선 100만 톤을 수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4년에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Mk35를 개발했으나 실전에 쓰이지는 못하고 1949년부터 미 해군에 보급됐다.

그렇다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 가장 뛰어난 어뢰를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명 ‘롱랜스’(long lance)라 불리는 Type 93 어뢰로 지름 24인치, 무게 2.68톤(장약 486㎏ 포함)에 시속 48노트로 20㎞를, 40노트로 32㎞를 항주하는 등 가장 빠른 속도와 함께 사정거리가 가장 길었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달리 이 우수한 무기를 항공기 외에 잠수함에 활용, 효과적으로 운용할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했고 이것이 패전의 한 원인이 됐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