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이게 어뢰라는 건가. 만만찮게 생겼는데….”

박철희 박사와는 달리 송준태 연구원 등은 사실 어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실물은커녕 제대로 찍힌 사진조차 본 적이 없었다. 어뢰 실물을 구하고 전문 기술 지식을 쌓는 것이 급선무였다.

대통령이 비서실(오원철 경제수석)을 통해 전력 증강 사업을 직접 챙기던 시기인 만큼 국방부와 군으로부터 지원받기가 매우 수월했다.

해군은 연구진의 협조 요청을 받고 곧바로 미 해군에서 도입한 Mk-44 경어뢰 1기를 연구용으로 내놓았다. 이준수 연구원이 진해 해군탄약창에 내려가 홍릉의 연구소로 직접 운반해 왔다.

Mk-44가 연구소에 도착, 전시되자마자 타 부서의 연구원들이 몰려들었다. 소총·박격포 등 지상용 소병기만을 연구개발하던 연구원들에게 좋은 구경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일반 탄약과 달리 Mk-44는 길고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데다 형상도 정교하고 재질도 복합재여서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발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 것이었다.

요구 성능이 ‘직진’이었으므로 음향 탐지부와 유도 제어부를 제거하고 자이로(Gyro)와 펜듈럼(Pendulum·振子)만을 이용, 일정 수심에서 직진이 가능하도록 하고 Mk-44 외형과 추진부만 그대로 본떠 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수준에서나 쉽게 보이지 그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그 정도마저 실패 위험성이 매우 높은 일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자 박철희 박사와 실무를 총괄한 송준태 연구원은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어뢰의 각 부분을 어떤 업체에서 제작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관련 업체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어뢰 제작을 총주관할 주 시제 업체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먼저 당시 삼성·금성(현 LG전자)에 이어 제3위의 가전제품 생산업체로 꼽히는 대한전선(현 대우전자)을 찾았다. 대한전선은 방위산업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특수영업부를 신설하고 1973년 해병대 편제 개편에 따라 예편한 해병대 영관 장교들을 채용해 놓은 상태였다.

대한전선은 선뜻 어뢰 제작을 위한 협의에 나섰다. 그러나 영등포에 위치한 대한전선 TV공장 회의실에서 수차례 가진 협의는 이내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TV공장 공장장을 비롯한 당시 대한전선의 최고 기술진이 어뢰 제작은 기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과제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헤쳐 나갈 길이 난망해 보이는 가운데 뜻밖에 길이 열렸다. 예비역 해병대 장교로 특수영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정차장(성명 미상)이 낮은 직급에도 불구하고 ‘참여’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내가 해병대에 있을 때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 지금은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어뢰 개발이야말로 회사 발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인데 무사안일하게 안 되는 이유만 찾는다. 끝까지 반대한다면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라도 싸우겠다.”

개발 참여를 주장하는 그의 설득은 반협박(?)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결국 대한전선은 최고 경영자의 결단에 의해 무유도 직진 어뢰의 시제를 총괄 제작하는 계약자가 됐다. 연구팀은 정차장의 모습에서 해병대 특유의 돌파력과 애사심을 엿볼 수 있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에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하는 계기도 됐다.

이제 별도 계약에 의해 추진하게 될 알루미늄 합금의 어뢰 후부 몸체와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 :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 재질의 중앙 몸체를 제작할 전문 업체를 찾아내야 했다. 개인 승용차는 물론 없고 연구소의 공용 차량 지원도 거의 불가능하던 시기 송준태 연구원이 홍릉에서 장시간 시내버스를 타고 영등포와 구로동 일대의 공장들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곳이 서울엔지니어링이었다.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정밀 주물 업체로 명성을 얻고 있는 서울엔지니어링은 후부 알루미늄 몸체 개발에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허름한 공장에서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오세철 사장이 직원들과 똑같이 국수로 끼니를 때우며 밤낮없이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이 젊은 어뢰 연구원에게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됐다.

FRP 중앙부 몸체는 아주 기본적이나마 원통형 몸체에 파이버를 감아 가며 합성수지를 경화시키는 제작 장치를 갖고 있던 미원 FRP가 담당하게 됐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만 연구진과 기술자들은 막상 제작 업무에 들어가자 기술력 부족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 가공한 후부 몸체의 경우 내부로 물이 스며드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수밀(水密) 시험을 위해 수조에 물을 채우고 어뢰 내부에 압력을 가하면 미세한 물방울들이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몸체를 뚫고 나와 땀방울처럼 맺히곤 했다.

FRP 몸체 또한 제작 과정에서 몸체 내에 미세한 기포가 다량 발생, 요구되는 강도 수준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었다. 대한전선에서의 전동기·기어 박스·추진 축 제작도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