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기계공업사라는데 병역을 대신해 3년간 장교로 근무한다는 조건이면 좋잖아.”

1972년 12월 말, 서울대 등 전국 주요 대학에는 구인 공고가 나붙었다. 모집 인원 총 30명. 20~27세의 나이로 기계·전자·금속·조선공학 전공의 대학 졸업 또는 졸업 예정자.

홍릉기계공업사라는 이름은 낯설었어도 졸업을 앞둔, 특히 졸업 후 군에 입대해야 할 4학년생들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 모았다. 병역 미필인 상태에서 이미 직장을 잡아 놓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직장을 갖든 대학원에 진학하든 우선 병역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웬만한 것은 다 비밀로 간주되던 시기. 홍릉기계공업사란 다름 아닌 ADD를 대외적으로 드러낼 때 쓰는 위장 명칭이고,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학생들이 알음알음 조금씩 알게 되면서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

서울대 캠퍼스가 위치한 공릉동의 한 다방에서 여러 명이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조선공학과 학생들로 화제는 홍릉기계공업사. 장교 신분으로 3년 근무하면 병역을 대체해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큰 메리트였다.

“우리끼리 치고받고 하지 말고 해군 장교 시험과 홍릉으로 나눠 시험을 치자고. 어때!” 학생들은 미리 생각해 뒀던지 과대표 박성희 학생의 말에 선뜻 동의하고 해군 장교 6명, 홍릉기계공업사 2명으로 갈 길을 정했다.

이렇듯 홍릉기계공업사에는 전국에서 189명의 졸업 예정자 등이 모여들었다. 1차 필기시험으로 50명을 우선 선발하고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30명의 우수한 인재를 뽑았다. 그들 중에는 서울대 조선공학과에서 ‘스스로 선발’돼 시험을 치른 박성희·김정석 학생도 포함됐다. 이들이 바로 ADD의 ‘과학 장교 1기’로 불리는 연구원으로서 박성희 연구원은 훗날 사업 책임자(project manager)로 중어뢰 백상어와 경어뢰 청상어를 개발하는 사업을 이끈 장본인이다.

‘홍릉’ 합격 통지와 함께 곧바로 발령받을 줄 알았는데 방향은 새내기 과학 장교들의 생각과는 달리 야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1973년) 1월 말께 느닷없이 입대 통지서를 받았어요. 과학 장교로 선발된 것은 알겠는데 해군사관학교로 오라는 거예요. 그곳에서 해군 장교를 지원한 대학 동기들과 18주 동안 훈련을 같이 받았습니다. 사관후보생(OCS) 56차로 임관한 셈입니다.” (박성희 박사·백상어 사업 책임자)

소위로 임관하면 발령받겠지 싶었지만 이번에는 서해 최전방 해군부대로 보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었다.

나라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후 연구에 임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6개월이었다.

박성희 연구원 등이 ADD에 발을 딛게 된 것은 74년 1월31일. 과학 장교 1기 30명이 모두 한자리에 비로소 모이게 됐다. 육군이 20명, 해군은 박성희·김정석·김재승 등 3명, 그리고 공군·해병대가 각각 4명·3명이었다.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ADD 관계자를 대했지만 호통부터 들어야 했다. “정신들 있어요? 집에 가서 빨리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세요.” 그때 군복을 입고 있던 연구원들은 생각했다. ‘아, 여기는 홍릉기계공업사지.”

어뢰팀의 연구는 이들 과학 장교 1기생 중 박성희·김정석 등 젊은 연구원이 74년 9월 합류하면서 좀 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성희 연구원은 마음 한편에 한 근 정도의 부담을 갖고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원인은 바로 연구실장인 박철희 박사. 훨씬 뒤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박사는 박연구원의 사촌 형님이었던 것. 그것도 “늘 두려웠던(?) 존재”라고 말할 만큼 마음 깊이 존경하는 형님이 박박사였다.

박연구원은 박박사에게 “홍릉 시험을 치르겠다”고 미리 귀띔했지만, 해군 무기 체계를 담당하게 되리라는 것도 예상했지만 정작 형님이 관장하는 어뢰 개발 업무를 함께 수행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박박사는 새내기 연구원들을 모아 놓고 칠판 가득히 ‘어뢰 운동 방정식’을 풀어 놓으며 ‘기를 죽이지’ 않았던가.

“형님으로부터 좀 내빼고 싶었어요, 하하. 그래서 형님과 자주 직면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쪽 업무를 김정석 연구원에게 미루고 하드웨어 쪽을 택했습니다. 서울엔지니어링과 대한전선을 부지런히 뛰어다녔지요.”(박성희 박사)


● 과학장교란

1970년 8월6일 창설된 국방과학연구소는 초기에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인력난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 이른바 ‘과학 장교’ 제도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방위 산업 육성 방안의 하나로 우수한 과학·기술 자원을 선발, ADD에서 단기 복무 장교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ADD는 72년 11월29일 과학 장교 선발 계획을 수립, 12월 말 공고를 낸 뒤 이듬해 1월 30명의 이공계 졸업(예정)생들을 선발했다. 선발자들은 무기 체계 관련 전공별로 육·해·공군에 배속돼 교육 훈련, 임관, 전방 근무 체험을 한 뒤 ADD에 합류했다.

73년 겨울에 실시한 과학 장교 2기 선발에는 309명이 응시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자질도 우수해 예정된 30명 외에 20여 명을 ‘특례보충역’으로 추가 선발했다. 하지만 과학 장교 제도는 이듬해 폐지되고 모두 특례보충역으로 통합, 선발했다.
지금도 연구원으로서 ADD에 몸담고 있는 과학 장교 1기는 안태영·장석·장성도·조원만·오기환·허선무·홍우표·박성희씨 등 8명이며 2기는 8명이다.

ADD는 최근 우수 연구 인력 확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박사급을 대상으로 한 과학 장교 제도 부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