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의 해군회관과 담 하나를 두고 함정과 해상(수중) 무기 체계의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연구 시설이 들어서 있다.

1976년 3월8일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그해 5월13일 창설된 국방과학연구소(ADD) 진해기계창(진해연구소의 위장 명칭)이 바로 그곳으로 지금의 제2체계연구개발본부.

진해기계창은 8부·9부 등 2개 부의 5개 연구실과 행정실로 조직됐지만 인원은 창장 김훈철 박사를 비롯해 21명에 불과했고 시설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여서 출범도 진해가 아닌 서울 홍릉에서 했다. 어뢰 개발은 8부 1실에 맡겨졌다.

연구실장으로 박철희 박사에 이어 현역 해군중령 김영수(金榮秀) 박사가 부임했고 어뢰팀에는 기존 박성희·전홍태·이동권 연구원 외에 역시 해군에서 파견된 김흥렬(돌고래 과제 책임자 역임·현 책임연구원) 소령 등 7명이 배정됐다. 연구실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을 자랑(?)했다.

김흥렬 소령과 함께 74년 1월부터 75년 10월까지 독일의 군항 도시 킬에서 잠수함 관련 조함 교육을 받은 바 있는 김영수 실장은 먼저 인계받은 상어 사업(어뢰 개발 사업의 위장 명칭)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미제 MK-44 경어뢰의 성능 중 직진 주행 기능만을 모방한 어뢰, 즉 ‘상어’ 시제는 1기가 이미 75년에 완성돼 ‘KT-75’로 명명된 상태. 연안의 뻘을 향해 발사하는 해상 발사 시험 계획도 있었다.

“계획안은 연안에서 뻘을 향해 발사하는 것 외에 별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어뢰가 뻘에 박히면 어뢰를 추진시키는 해수 전지(電池)가 열에 의해 손상될 위험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계획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시험 계획을 새롭게 마련해야 했습니다.”(김영수 박사)

상어 KT-75가 MK-44를 모방한 경어뢰였지만 수중 직진 성능 확인에 시험 발사의 목적을 두고 중어뢰 발사에만 사용하는 스윔아웃(Swim Out ：발사관 내부가 물이 채워진 상태에서 어뢰 추진기의 회전력에 의한 어뢰 발사 방식) 방식으로 시험 발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먼저 해군 병기탄약창에서 육상 시험을 거쳐야 했고 또 스윔아웃 방식의 발사관 설계와 제작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해군의 협조가 필요한데 홍릉에서 처리하기에는 무리였다.

진해기계창은 이듬해 봄 진해 이전에 앞서 사전 준비와 KT-75의 발사 시험 준비를 위해 76년 11월 선발대와 어뢰팀을 진해로 내려보냈다. 사무실은 해군의 고속 기관 정비공장의 2층 사무실 두 개를 빌려 쓰게 됐다. 그해 겨울, 남부 지방치고는 추운 날이 많아 기름 난로 신세를 톡톡히 졌는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연기가 거꾸로 들어와 연구원들의 콧구멍이 새카맣게 되곤 했다.

발사관은 ‘하드웨어에 대한 설계 능력이 매우 우수했던’(김영수 박사) 김흥열(현 책임연구원) 연구원이 설계, 창원에 위치한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곧바로 제작에 들어간 가운데 육상 시험은 해군 병기탄약창에서 MK-44 정비 요원들의 지원 하에 특히 해군에서 갓 제대, 연구팀에 합류한 김정식씨를 위주로 이루어졌다.

김정식씨는 기능직 요원이었으나 MK-44 어뢰를 직접 정비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토대로 경험과 기술이 미약한 연구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그 사이 연구팀은 사무실이자 연구실에서 KT-75가 정상적으로 직진할 것인가를 두고 열을 올리며 토론했다. 자이로와 펜듈럼은 물론 어뢰의 자세를 조종하는 액추에이터(actuator)에 대한 자료도 없고, 몸체에 대한 유체 역학 기술 자료 역시 없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시뮬레이션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개략적인 작동 논리에 의한 직진 가능성만을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뢰 발사 후 주행, 그것은 항공기로 치면 초도 비행에 맞먹는 긴장을 주는 것이었다.

“어뢰가 수면에 가까이 오면 밑으로 내려가게, 일정 수심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위로 오르도록 수심 센서를 설정했고 해저에 닿을 위험이 있으면 동력을 차단해 수면에 뜨도록 했습니다. 또 물감을 넣어 어뢰의 주행 경로를 공중에서 보이도록 하고 주행을 마치면 수면에 뜨도록 하면서 소리를 내어 함정의 소나로 들을 수 있게 했지요.”(전홍태 연구원·현 중앙대 교수)

77년 1월13일, 하늘이 티 없이 맑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살을 에듯 피부를 파고 들던 그날 어뢰 시험 발사 준비를 다 갖춘 소해정은 “출항 5분 전”을 외치더니 연구팀을 태우고 유유히 진해 군항을 빠져 나와 시험 발사 해역인 칠천도 근해로 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날 좋다”라고 예감 좋은 말이라도 꺼낼만 하건만 대부분 침묵했고 소해정의 엔진 소리만 크게 들렸다.

이윽고 소해정이 칠천도 근해에 이르러 발사 방향을 잡자 또 다른 소해정 1척이 기뢰 탐색 소나로 어뢰의 추진 소음을 포착하기 위해 발사함에서 약 300m 전방 오른쪽으로 자리했다. 얼마 후 어뢰를 추적할 헬기와 훈련기가 모습을 나타내자 “어뢰 발사 준비” 명령이 함내 방송으로 울려 퍼졌다.

“10초, 9초, 8초,…3초, 2초, 1초, 발사!”

김영수 실장의 카운트다운은 힘찼고 KT-75 상어는 기세 좋게 발사관을 빠져 나갔다. 잠시나마 직진하는 모습이 갑판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연구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또 다른 추진 소음을 추적하던 소해정에서도, 어뢰가 흘리는 물감으로 어뢰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헬기와 훈련기에서도 KT-75 상어의 행방에 대한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