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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21)

첫 수중 모형 시험 중 의문의 선회 모멘트(moment) 현상을 풀지 못하던 연구팀에 김찬기 연구원이 반가운 외국의 한 연구 보고서를 발견, 선사했다. 모형 수중 운동체에 덕트(duct)만을 달고 시험하면 이론적으로 덕트에서 시작되는 층류(laminar flow)가 덕트 내부 유동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첫 시험 때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반색했다. 이에 따라 조종 성능 모형 시험에서는 덕트를 추진기 일부로 간주, 추진기를 달지 않을 때에는 덕트까지 제외하고 추진기를 다는 경우 덕트와 로터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개념을 재정립했다.

1991년 연구팀은 이 같은 접근법에 따라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KRISO·현 한국해양연구원)에서 V-PMM 모형 시험을, 미국 데이비슨 연구소에서 강제 선회 모형 시험(rotating arm model test)을 수행했다. 시험 결과는 대부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모형의 좌우 움직임을 말해 주는 횡동요(roll motion)의 모멘트 크기가 너무 작은 데다 진원의 운동을 일정하게 해 주기가 어려워 신뢰성이 다소 떨어졌다.

한편 MK-44 경어뢰의 음향 탐지 부분을 한국 해양 환경에 적합하도록 개선한 K-744를 개발한 아날로그 회로의 전문가들인 기존 연구인력과 백상어 개발을 위해 충원된 디지털 회로에 밝은 신입 연구원이 묘한 조화를 이룬 유도제어부·음향탐지부에서도 어렵사리 초기 설계 사양을 도출했다.

유도제어부의 경우 하드웨어적으로 볼 때 유도제어 컴퓨터와 수중 항법 장치·구동 장치·전원 공급 장치 등으로 구성된다. 어뢰 전체를 체계 종합적인 차원에서 놓고 볼 때 이 분야가 차지하는 기술적인 비중은 80~9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다른 부체계(sub-system)에서 들어와 종합된 각종 정보를 처리하는 적절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선택이 매우 중요한 설계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백상어 개발 당시는 16비트(bit)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286 CPU(중앙 처리 장치)를 사용한 퍼스널 컴퓨터가 최고급 사양으로 취급되던 때였다.

백상어의 상태를 종합 판단하고 처리하는 시스템 로직(logic)과 유도·제어·항법을 담당하는 유도제어부는 내부 데이터 계산 능력과 더불어 과다한 외부 신호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텔사의 80286을 선정했다.

그러나 음향탐지부는 유도제어보다 로직 처리 부분은 적지만 변화가 심한 수중 환경과 정밀한 표적 탐지를 위한 수중 음향 처리를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 처리가 필수적이므로 보다 고성능이면서 병렬 처리가 가능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필요했다. 따라서 위험 부담이 높지만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이며 병렬 처리가 가능한 인모스사의 트랜스퓨터(transputer)라는 CPU를 택해야 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연구팀은 이 마이크로프로세서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는데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순전히 반도체와 컴퓨터의 급속한 발달로 CPU의 단종 주기가 극히 짧아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독자 개발의 경우 분야별로 정확한 설계 사양을 한꺼번에 도출낸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다. 연구팀은그런 어려움 속에 설계 사양을 구하면서도 그때까지 다른 무기 체계 개발에서는 적용하지 않은 종합적인 시뮬레이션 기법·장비와 관련된 기능을 위한 사양을 도출해 내고 있었다.

실시간 HILS(Hardware in the Loop Simulation)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으로 백상어 고유 기능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내부 로직과 알고리즘(소프트웨어), 제작된 시제(하드웨어)의 성능 검증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해상 발사 시험 때 많은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첨단 기법이었다.

“종합적인 무기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부체계 조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계 종합이라는 관점에서 무기 체계 전반에 걸친 설계 사양이 도출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또 얼마나 어려운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박사)

그렇게 선행 개발 단계에서 시험용으로 쓸 시제품(선행 시제)의 설계를 예상보다 몇 개월 앞당겨 마무리 짓고, 그 결과로 연구팀은 선행 시제의 제작을 무려 1년이나 앞당기는 기쁨을 만끽했다. ‘새끼 백상어’라고 말할 만한 선행 시제는 본래 1993년 말 납품될 예정이었으나 92년 말 연구팀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가 정말 만들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2년여 동안 온갖 공을 들인 결과였다.

선행 시제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곧바로 발사 시험을 가질 수는 없다. 마치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말을 익히도록 돌보아 뛰놀게 하듯 새끼 백상어에게도 제법 모양새를 갖추게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즉, 구성품들이 각각 제대로 작동하는지 기본 기능 시험을 해 보고 또 체계 전체적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지 인터페이스 시험을 해 보고 미진한 점이 있으면 이를 보완·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의 아날로그 시대에 확보된 경험들은 백상어의 경우 별반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날로그 회로의 주요 부품들, 즉 릴레이·기계식 타이머·반도체식 스위치 등은 디지털 회로에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도제어부의 경우 그 당시 국내 유도 무기 체계에서는 거의 최초로 완전 디지털 제어 시스템으로 설계·제작됐으므로 어디에도 기준으로 삼거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을 홀로 길을 내면서 뚫고 가야만 하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어뢰의 두뇌와 척수 부분에 해당하는 유도제어부 전체가 제대로 기능토록 하기 위해 92년 말부터 유도제어 컴퓨터에 2개월, 구동 장치에 3개월, 수중 항법 장치에 3개월, 전원 공급 장치와 기타 시험 환경 구성에 1개월이 소요됐다. 어젯밤을 꼬박 새워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었던 전자 회로들이 다음 날 아침에는 오작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분야의 팀장이었던 김삼수 연구원의 표현대로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작동은 모든 부체계가 하나로 조합, 하나의 전 체계로 구성돼 동작할 때 더욱 심해져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발생하고는 했다. 당시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 연구원이나 아날로그 시스템에 익숙한 기존 연구원들의 관점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원인 분석과 대책을 위한 수많은 연구와 설계 변경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

2005-09-20 00: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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