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어의 체계 종합 책임자이자 훗날 청상어 개발 사업 책임자를 지낸 이재명 박사는 백상어의 2차 발사 시험을 위해 사전에 실시한 고속 부하 시험만 떠올리면 가슴에 손부터 얹고 본다.

박영일 연구원은 이 시험 중 발생한 사고를 계기로 “항상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담당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히 대처해야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돌아본다.

1993년 9월 1차 해상 발사 시험 성공에 무척 고무된 연구팀은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2차 발사 시험을 앞두고 11월 12일 다이나모메타(Dynamometer)가 설치된 추진동력실에서 백상어 전동의 고속 부하 시험에 나섰다.

이날도 시험 시간은 평소처럼 저녁 늦은 시간에 잡혀 있어 이재명 박사와 각종 데이터 기록과 장비 작동을 맡은 연구원, 그리고 시험을 참관할 그 외 연구원 등 20명은 느긋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추진동력실에 자리했다.

이재명 박사는 먼저 시험 중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이어 백상어의 2차 추진 전지와 유도 제어부 등 어뢰 주요 구성품을 전동기와 연결한 후 이박사는 시험 세팅의 중간 위치에 서서 시험을 지휘해 나갔다.

다이나모메타를 동작시키기 위한 몇 가지 장비가 가동되면서 추진동력실 내부는 소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큰 소리를 쳐야만 상대방이 겨우 알아 들을 정도였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긴장 속에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이박사의 백상어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출력 100여 마력에 해당하는 전동기는 이내 웅장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1분도 채 안 돼 고속으로 회전하는 전동기에 불이 붙는다 싶더니 순식간에 백상어 후부몸체로부터 화염방사기에서 화염을 방사하듯이 불길과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정지” “스위치 꺼!” 이박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명령을 내렸다.

불길은 더 거세졌다. 좀 과장하자면 마치 실험실과 건물을 다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이박사는 그 경황 속에서도 침착히 전동기를 정지시킬 수 있는 방법, 즉 전동기에 공급하는 전기를 차단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이미 과전류에 의해 전기 차단기인 콘택터가 녹아 붙어 버린 상태. 그는 망설임 없이 전지와 전동기를 연결해 주는 버스바(bus bar)를 잡고 흔들어댔다.

버스바가 끊어지자 회전도 멈추고 불도 더 번지지 않아 쉽게 진화할 수 있었다. 물론 전동기는 큰 손상을 입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연구 개발의 어려움과 위험함을 절실히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운 이박사는 문득 무서운 영상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불과 몇 시간 전 그는 버스바를 맨손으로 잡아 흔들었던 것이다. ‘만의 하나 버스바의 코팅이 벗겨져 2000암페어 이상이나 되는 전류가 몸으로 흘렀다면?’ 그는 떨리는 가슴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두고두고 술자리에서 안주감이 됐다.

이튿날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화재의 주 원인은 전동기의 브러시가 회전력에 의해 이탈하면서 전지의 + - 극을 단락시키면서 수천 암페어 이상의 전류가 흘러 발생한 문제점으로 확인됐다. 브러시의 이탈만 막으면 전동기의 고속 회전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됐다.

2차 발사 시험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 백상어의 전동기는 다시 제작해야 했다.

그러나 전동기의 재시험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1차 시험에서의 문제점에 대처하기 위해 별도의 전기 차단기인 나이프 스위치·소화기 등을 동원한 상태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브러시가 이탈하는 문제가 발생했어도 커다란 문제점은 없었다.

재차 브러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 끝에 성공적인 전동기의 고속 모드 시험이 완료되고 2차 해상 발사 시험은 1994년 2월에 실시키로 계획됐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