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純祖) 시대에 훈련도감 대장을 지낸 박종경(朴宗慶)은 20회에 소개한 목화수차(木火獸車) 외에 다양한 무기를 개발했다. 박종경이 1813년에 만든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화차다.

조선 초기 문종(文宗)이 만든 화차는 사전총통,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柳成龍)이 만든 화차는 승자총통, 21회에 소개한 신경준이 만든 화차는 불랑기포를 탑재하고 있다. 박종경 화차는 총통이나 화포류가 아닌 총을 탑재한 것이 다른 화차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박종경 화차와 똑같은 화차는 아니지만 조총 50정을 탑재한 유사한 방식의 화차가 이미 1675년(숙종 1년)에 개발됐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1년 2월21일조를 보면 “훈련도감에서 화차를 새로 만들었다. 가운데에 두 바퀴를 설치했고 위에는 다섯 층의 나무판자를 설치하고 판자마다 열 구멍을 뚫고 구멍마다 조총(鳥銃) 한 자루를 벌여 놓았는데 따로 나무화살을 그 끝에 매어 불을 사르면 조총 10정이 차례로 저절로 쏘아지니 만드는 법이 자못 교묘하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박종경 화차는 목화수차와 마찬가지로 ‘융원필비’(戎垣必備)라는 책에 설계도만 남아 있을 뿐 실물 유물이 없는 탓에 지난해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의 노영구 연구원과 육군사관학교 강성문 사학과 교수에 의해 재조명되고 있다.

노연구원은 “육군박물관 소장품 십연자총이 바로 박종경 화차의 총”이라고 주장,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 ‘융원필비’에 수록된 박종경 화차 설계도를 보면 십연자총 유물과 동일한 형태의 부품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강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논문을 통해 “박종경 화차는 화차 좌우에 방패가 설치돼 화차를 운용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고 화차 위에 덮개가 설치돼 비가 내려도 사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또 “화차를 통해 한 사람이 동시에 무려 50정의 총을 조작할 수 있으므로 한 사람이 50명 몫을 해낼 수 있는 것이 전술적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융원필비’ 자체에는 구체적인 발사방식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위 숙종실록 기록을 참고하면 사격방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실록을 보면 총 자체의 점화·격발장치를 이용하지 않고 총 위에 화살대를 걸쳐 놓고 그 화살대에 불을 붙여 차례로 점화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점화할 때 사용하는 약선과 다르게 화살대는 대나무 재질이므로 금방 불이 옮겨 붙지 않는다.

박종경 화차는 10연장총을 5층으로 겹쳐 탑재하고 있으므로 불붙은 화살대 5개를 동시에 올리면 열 번에 걸쳐 5발씩 발사된다. 다시 말해 동시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지속적으로 발사된다고 할 수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