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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이야기 (3)
김옥균 "울릉도 불법침입 일본인 꼼짝마"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개척의 역사가 있다. 울릉도 개척사가 그것이다. 울릉도 개척은 고종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에 몰래 들어와 우리의 자원을 마구 유린해 가고 있었다. 1881년 울릉도를 순찰하던 조선관헌은 이 같은 사실을 중앙정부에 보고했다.


◆ 일본 외무성에 항의서계 보내 불법침입 금지요구

[사진설명] 조선여지도.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 당시 가져간 것으로 추정되며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조선영토와 같은 색으로 표기했다.


중앙정부는 일본 외무성에 항의 서계를 보내 불법침입의 금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해 현지에 파견했다. 이규원은 제주 목사(1891~94년)와 군무아문대신(軍務衙門大臣·현 국방장관·1894년)을 지냈던 인물로, 1881년 울릉도에서 검찰관으로 일했다. 그 당시 쓴 일기 겸 보고서가 바로 〈울릉도 검찰일기*(鬱陵島檢察日記)〉인데 최근 이것이 후손들에 의해 공개되면서 고종의 적극적인 울릉도 보호 및 개척정책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기는 당시 울릉도에서 암약하던 일본인 도벌꾼들과 필담을 나누어 〈일본제국지도(日本帝國地圖)〉 등에서 울릉도를 마쓰시마(松島·송도)라고 칭한 점, 이들이 모두 78명이라는 점 등을 담고 있으며 이규원은 이 일기에서 ‘울릉도를 포기해선 안 될 것’이란 견해도 밝히고 있다.

이 무렵 조정에서는 공도정책 폐지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1882년 조사에서 울릉도에 140여 명의 조선인과 78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는데, 나무를 베어가기 위해 들어온 일본인들이 울릉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일본 외무성에 일본인의 울릉도 입도 금지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한다. 외무성은 즉시 회답하지 않고 울릉도 영유권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울릉도는 일본판도 밖에 있는 조선 영토’라는 결론이 나오자 즉각 ‘일본인은 울릉도에서 모두 철수했다’고 회답해왔다.


◆ 을릉도 이주시 5년간 세금 면제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울릉도에 침입하여 나무를 베어갔다. 울릉도 사정을 다시 면밀히 조사한 조정은 1882년 울릉도 개척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먼저 울릉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고, 영호남의 조운선을 울릉도에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검찰사의 천거를 받아 도장(島長)을 임명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울릉도를 개척하기 위해 1883년 3월 16일 개화파의 영수 김옥균을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로 임명했다. 김옥균을 개척사로 임명한 것은 수구파들이 그를 중앙정계에서 밀어내려고 한 의도도 있었지만, 평소 울릉도 개척과 임업과 어업개발을 주장해 온 김옥균의 능력을 활용해 울릉도와 독도를 개척하려는 것이 고종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일본 고서점가에서 발견된 〈조선여지도〉에는 김옥균이 지도를 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행사에는 ‘지도는 팔도 부, 현, 군, 병영, 수영, 명승, 산천, 암각, 도서의 위치가 손바닥을 가리키듯 정밀하다. 이는 김씨가 일찍이 국력을 기울여 조사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 김옥균 동남제도개척사 임명…을릉도 · 독도 개척의도

이 지도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서도 그 영유권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는 무색으로 처리하고 한국의 영토는 각종 색깔로 표시함으로써 한국과 주변국간의 영토구분을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도에 울릉도와 독도는 강원도와 같은 옅은 주황색으로 칠해져있고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는 영토경계선 안쪽에 함경도와 같은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정부가 김옥균으로 하여금 울릉도를 개척하려 할 때 내린 직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직함은 울릉도개척사가 아니라 동남제도개척사이다. 여기서 제도(諸島)란, 울릉도와 죽도(저동 앞의 죽서도), 그리고 우산도(독도)를 포함하는 개척사임을 알 수 있다.

김옥균을 개척사로 임명한 조정은 강원도 지방에서 7~8호, 경상도 지방에서 10여 호를 이주시키고, 1883년 4월 전라도 지방 등에서 54명을 이주시켰다. 식량과 곡식의 종자, 총검 등 무기류, 가축 목수 대장장이 등도 함께 들어갔다. 입도 3개월 후인 1883년 7월에는 310두락의 농경지를 개척했다.


◆ 강력 항의 · 교섭 일본인 모두 철수…개척사업 큰성과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할아버지 홍재현도 이때 울릉도에 들어갔다고 한다. 1883년 4월 8일 강원도 강릉에서 10년을 예정으로 울릉도 들어간 홍재현은 뱃길로 4일만에 울릉도 북면 현포에 도착했다고 한다.

조선 정부는 개척에 적극적이었다. 개척사 김옥균은 강력한 항의와 교섭을 통해 일본정부가 울릉도의 일본인들을 철수시키도록 만들었다. 1883년 9월 일본 내무성은 배를 파견해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있던 일본인 254명을 모두 데리고 돌아갔다. 이는 울릉도 개척사업의 큰 성과였다.

정부는 울릉도의 삼림 벌채권도 외국인에게 넘기려하지 않았다. 조선 정부와 조선인이 직접 벌채하여 일본에 판매하고자 했다. 개척사의 종사관 백춘배는 1884년 8월 일본 만리환(萬里丸) 선장과 판매계획을 체결하기도 했으며,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울릉도의 삼림을 담보로 차관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1884년 12월 갑신정변 실패로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한 후에도 조선정부는 개척을 멈추지 않았으며 백성들의 울릉도 이주는 꾸준히 증가했다.



김성호 :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도연구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울릉도-독도 뗏목 탐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독도를 탐사하고, 독도를 주제로 한 각종 전시회를 진행했다. 1993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40주년 기념행사, 2005년에는 독도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를 진행했다. 주요 저서로 <재미있는 대학여행>, <한국의 만화가 55인> 등이 있고, 공저로 <친일변절자 33인>,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등이 있다.

< 출처 : 국정브리핑, 2006. 3. 9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3-09 19: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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