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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이야기 (5)
일본, 없는 섬도 만들어 영토 편입

없는 섬도 만들어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이 일본이다. 하물며 눈에 보이는 독도쯤이야?

일본이 편입시킨 가공의 섬은 나카노도리시마(中ノ鳥島). 메이지 40년(1907년) 8월, 도쿄 주민 야마다 데이사부로(山田禎三郞)가 오가사와라(小笠原) 군도에서 560해리(약1,037㎞) 떨어진 북위 30도 05분, 동경 154도 02분 지점에서 하나의 섬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일본 정부는 1908년 8월 8일자 도쿄부 고시 제141호로써 이 섬을 나카노도리시마라고 이름 짓고 오가사와라 도청 소관으로 했다. 1908년 7월 18일 일본내각은 이 섬에 대해 “(섬의 실체가 불분명함에도) 본건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주무성과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그 문서에는 법제국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일본의 독도연구자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는 1966년 출간된 〈죽도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에서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도 나카노도리시마의 예와 같이 내각에서 결정하고, 이를 고시하는 당시 일반적인 관행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 실체 불분명해도 영토 편입 강행

[사진설명] 일본 말뚝 제거 : 1953년 일본이 독도의 자국령임을 주장하며 박아놓은 말뚝을 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섬에 대해 미국이나 영국의 수로지에서는 의심스런 섬으로 취급했으며, 그 위치가 확인된 적은 없었다. 일본정부 내에서도 실체가 불분명해 논란이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영토 편입을 강행했다.

그 후 일본정부는 발견자의 보고에 따라 주변 해역을 여러 차례 탐사했으나 섬은 발견하지 못했다. 없는 섬이 갑자기 바다에 뚝 떨어질리 없었다. 해군당국은 1943년 1월 13일자로 군기고시(軍機告示)에 따라 관계 지도에서 섬을 삭제했다.

이 같은 영토팽창욕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 관방장관, 일본에선 영토문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실은 제가 연구해온 나카노도리시마(中ノ鳥島)란 섬이 있습니다.

저는 시마네현 출신이고 다케시마 문제가 일찍이 큰 문제가 돼 일본의 여러 도서 영유문제에 흥미를 가졌고 십여 개 도서가 일본령으로 편입돼온 과정 등을 조사해봤습니다.

그 가운데 메이지(明治) 41년의 각의결정에서 일본에 영유된 나카노도리시마란 섬이 있었습니다. 이 섬은 전후 여러 차례 찾아보아도 어떠한 기록도 없음에도 각의결정으로 일본 영유가 됐습니다.

그리고 일본 영유로 도쿄부에 편입해 오가사와라 도청(島廳) 소관으로 한다는 각의결정이었습니다만, 어디에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어 조사했습니다. 조사해보니, 이 섬은 실제 없었던 것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섬을 각의결정에서 일본령으로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기묘한 결정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국의 판도에 속하게 하는 일에는 논의가 필요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영토확장욕이 이성(理性)을 마비시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8년 4월 7일 일본 참의원 총무위원회 공산당 요시오카(吉岡吉典)의원 대정부 질의)


◆ 285억엔 쏟아부어 섬 만들어

일본의 영토야욕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도쿄에서 무려 1,700여㎞떨어진 일본 최남단의 오키노도리시마(沖鳥島)란 섬이 있다. 최고 높이 2.7m인 이 섬은 유엔해양법협약에서 일단은 섬으로 인정받았으나 만조 시에는 물에 잠겨 보일듯 말듯 한 상태였다.

일본은 1987년 이 섬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면서 수면에 드러나는 바위가 줄어드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일본 건설성은 재해복구라는 명목으로 바위를 고정하는 공사를 실시했다. 바위 위를 1만 개의 소파(消波·삼발이)블럭으로 둘러싸고 콘크리트로 고정시키는 대공사를 진행했다. 약 400일 동안, 연인원 8만 명을 동원해 285억 엔이나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이 섬을 기점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독도는 섬의 형태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던 오키노도리시마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확실한 섬이다.



김성호 :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도연구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울릉도-독도 뗏목 탐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독도를 탐사하고, 독도를 주제로 한 각종 전시회를 진행했다. 1993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40주년 기념행사, 2005년에는 독도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를 진행했다. 주요 저서로 <재미있는 대학여행>, <한국의 만화가 55인> 등이 있고, 공저로 <친일변절자 33인>,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등이 있다.

< 출처 : 국정브리핑, 2006. 3. 1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3-14 1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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