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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이야기 (끝)
독도에 나무가 뿌리를 내린 이유



[사진설명] 1989. 4.20 독도.


“젊은이들이 독도를 살피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독도의용수비대장이던 고 홍순칠 씨는 틈만 나면 울릉도 청년들에게 독도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울릉도 청년들이 선택한 사업(?)이 독도에 나무심기. 독도를 살피기 위한 특별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 데다 1973년 울릉애향회에서 해송 50그루를 심었던 터라 나무심기가 주요사업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섬에 나무 몇 그루 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흙과 묘목 등 40㎏이 넘는 짐을 진 채 경사 70도가 넘는 바위절벽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이토록 어려웠던 이들의 식목활동은 1979년을 끝으로 일시 중단된다. 일본이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외무부는 1980년 초 공문을 통해 독도에 들어가는 걸 자제해달라고 요청해왔다.

독도 나무심기 활동이 새롭게 진행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1989년, ‘푸른독도가꾸기 모임’을 결성한 후부터이다.

발기인은 이덕영, 이예균 씨 등 모두 12명. ‘향토 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라는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적인 영토보존의 일환으로 독도의 천연기념물 및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며 돌섬을 푸른 영토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사진설명] 독도식목.


◆ 1989년 이후 꾸준히 나무 심어

1989년 4월 회원 50명이 어선을 빌려 독도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독도조림 5개년(1989~1993년) 계획’에 따라 회원들은 해송 등 7종의 묘목 1,780그루와 비료 200부대에다 흙까지 가지고 가 6일 동안 먹고 자면서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심은 나무들은 대부분 말라 죽거나 토끼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경상북도, 울릉군과 함께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풍에 적응이 안 된 탓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1990년과 1991년에는 살아남은 나무에 비료를 주고 유실된 흙을 채우는데 만족해야 했다.

1992년 3월에는 모임의 명칭을 ‘푸른 울릉·독도가꾸기 모임’으로 바꾸고 회원수도 102명으로 늘렸다. 울릉읍 사동 3리에 독도조림용 해풍적응묘포를 설치하고 눈향, 동백, 섬괴불, 보리장, 사철, 후박, 감탕 등의 수종을 갖췄다. 묘포는 분재식으로 키운 후 독도에 그 흙과 함께 가져가서 묻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심어진 나무 가운데 현재 800여 그루가 성목으로 자라고 있으며, 서도 물골에 심은 섬괴불의 경우 지름 5㎝ 이상으로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무궁화 2그루가 독도 정착에 성공했고, 동백나무도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독도의 나무는 본래 무쇠처럼 단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랫동안 나무 하나 자라기 힘든 돌섬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독도에도 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이규태 씨에 따르면 남해의 거문도에는 독도에서 꺾어온 나무로 만들었다는 가지 방망이며 가지홍두깨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배를 만들 때 이 독도에서 꺾어온 나무로 나무못을 만들어 박았다 한다. 이규태 씨는 그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0여 년 전 거문도에서 80대의 노 어부 박운학 옹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에 의하면 구한말 당시 거문도 어부들은 울릉도에 가서 아름드리 거목을 베어 배를 만들고, 또 그 재목을 뗏목으로 만들어 끌고 온다고 했다. 해변에 움막을 치고 배를 만드는데 쇠못을 구할 수가 없어 독도까지 가서 나무를 베어와 그 나무못으로 조립을 했다한다. 왜냐하면 이 바위섬에서 자란 나무는 왜소하지만 몇 백 년 몇 천 년 풍운에 시달려 목질이 쇠만큼 단단해져 있기 때문이라 했다. 독도나무를 베어오면서 물개 한 마리를 잡아와 기름을 짜고 그 기름으로 밤을 밝혔다.”

그렇다면 독도에서 이 나무가 없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규태 씨는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방망이 홍두깨로 다 나갔듯이 독도 나무도 나무못이나 방망이 홍두깨로 모조리 베어져 나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울릉도 주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독도의 나무가 없어진 주범으로 미 공군의 독도폭격을 들고 있다.

“엄청난 폭탄을 퍼부었는데 독도에 풀 한포기 살아있겠어요? 폭격당시 울릉도에서도 보일 정도로 독도 쪽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올랐으니까요. 나무는 그 때 모조리 타버렸죠.”




[사진설명] 2003. 6.27 푸르른 독도.


◆ 울창한 독도…우리의 실효적 점유 상징

그래서 헐벗은 독도를 푸르게 하는 ‘푸른 울릉·독도가꾸기 모임’의 독도 가꾸기 운동은 없던 나무를 새롭게 심는게 아니라, 과거에 울창했던 나무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운동은 단순한 환경보호를 초월한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 자체가 우리의 실효적 점유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호 :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도연구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울릉도-독도 뗏목 탐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독도를 탐사하고, 독도를 주제로 한 각종 전시회를 진행했다. 1993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40주년 기념행사, 2005년에는 독도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를 진행했다. 주요 저서로 <재미있는 대학여행>, <한국의 만화가 55인> 등이 있고, 공저로 <친일변절자 33인>, <부끄러운 문화답사기> 등이 있다.

< 출처 : 국정브리핑, 2006. 3. 2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3-22 20: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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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allnet 일본인은 죽었으니 우리 독도를 잊고 북한을 봅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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