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안악군 용수면에 위치한 안악3호분에는 ‘대행렬도’라고 불리는 대형 벽화가 남아 있다. ‘대행렬도’ 속에는 도끼를 든 병사, 창을 든 병사, 갑옷으로 중무장한 병사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의 병사들이 등장한다. 이 벽화 속의 고구려 병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대부분 찰갑(札甲)이다.

찰갑은 지난 회에 소개한 판갑과 함께 삼국시대의 대표적 갑옷 양식이다. 쇠·구리·가죽 등의 작은 조각(갑옷 미늘)을 가죽 끈으로 엮어 만든 갑옷이 찰갑이다. 찰갑은 판갑과 비교해 가볍고 신축성이 있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중앙아시아나 동북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이 착용하던 갑옷은 대부분 찰갑이다. 숭실대 사학과 최병현 교수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기병(騎兵)들도 주로 찰갑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말과 사람이 모두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을 중장기병(重裝騎兵)이라 부르는데 삼국시대 중장기병이 착용한 갑옷도 기본적으로 찰갑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찰갑을 착용한 시기는 고조선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시 정백동의 고조선시대 토광묘에서도 찰갑이 발견된 적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서 주로 찰갑을 착용했으며 점차 백제·신라·가야 순서로 전파됐다. 학계에서는 찰갑이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전파된 것은 기마문화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진시황릉(秦始皇陵)에서 발견된 병마용(兵馬俑)의 갑옷들도 모두 찰갑에 해당하지만 재질이 주로 가죽이라는 점이 다르다. 우리나라 찰갑의 주재료는 쇠지만 드물게 뼈를 사용해서 만든 경우도 있으며 가죽으로도 만든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에서 뼈로 만든 백제 찰갑이 1984년에 출토되기도 했다.

한반도 전역에서 삼국시대의 찰갑이 출토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원형을 복원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유물이 출토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갑옷 그림을 통해 찰갑의 형태를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전쟁기념관 고대전쟁실에 전시돼 있는 고구려 찰갑(사진)도 실물 유물이 아니라 추정 복원한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2.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