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임진강은 고대 삼국시대에도 남북 세력이 서로 대치하던 국경 하천이었다.

4~5세기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6~7세기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그리고 7세기 후반에는 당나라와 통일신라가 이 강을 두고 서로 대치했다. 임진강 주변에 천년이 넘는 고성(古城)이 많은 것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특히 연천평야 일대를 서쪽으로 관통하는 구불구불한 임진강에는 유달리 이런 고성들이 밀집해 있다.

중부지방의 대표적 사행천(蛇行川)인 임진강의 옛 이름은 호로하(瓠蘆河)·표하(瓢河) 또는 칠중하(七重河)인데 이는 표주박이나 호리병 모양같이 굴곡이 심해 붙여진 이름이다.

함경도에서 내려오는 임진강 본류는 경기도 전곡 일대에서 한탄강과 합류한 후 연천평야를 지나면서 여러 번 휘돌아 서쪽으로 나아가는데 강물의 유속이 약하고 유량이 적다 보니 여러 곳에 강을 비교적 쉽게 건널 수 있는 나루(津)와 여울(灘)이 만들어졌다. 특히 연천평야는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있고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임진강에는 건너기 쉬운 나루나 여울이 많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 일대는 남북을 연결하는 주요 무역 교통로 및 군사 기동로가 형성돼 왔다.

이 지역의 남북 통로는 크게 세 곳으로 볼 수 있는데 ‘감악산 서쪽 통로’는 서흥~평산~임진강 고랑포~구 적성읍~설마치~양주·한성 통로이고, ‘감악산 동쪽 통로’는 삭령~마전~임진강 당포나루~양주·한성 통로이며, 세 번째 통로는 안협~연천~임진강 차탄~양주·한성 통로다. 그런데 이 세 통로가 지나는 임진강 북안에는 자그마한 성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데 고랑포 쪽의 호로고루성(瓠蘆古壘城), 당포나루의 당포성(堂浦城), 차탄 근처의 은대리성(隱垈里城)이 그것이다.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에 있는 호로고루는 길이가 280m이고 동쪽 성벽을 기준으로 성벽 하단 폭 30m, 높이 10m의 석성이다.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위치한 당포성지는 전체 길이가 370m, 동쪽 성벽의 하단 폭 30m, 높이 7m의 석성이다. 연천군 전곡읍 은대1리에 위치한 은대리성은 전체 길이가 920m이며 성 하단 폭 10m, 높이 4m의 토석 혼축성이다. 또 세 성 모두 임진강을 접한 절벽 쪽에는 1m 정도의 석벽만 쌓아 놓았다.

이 성들은 1993~95년 육군박물관 조사단의 지표조사에 의해 최초로 확인됐다. 당시 조사단은 이들 성을 일단 고구려 성지로 추정했다. 왜냐하면 이 성들은 강남세력이 강북으로 도하하는 것을 막는 데 적합한 위치인 임진강 북안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고 수습된 유물도 고구려 계통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르러 이 성들은 발굴을 통해 역시 고구려의 전초기지 및 보루임이 드러나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호로고루(경기도 기념물 제174호)와 당포성(경기도 기념물 제192호)은 동쪽 성벽의 축조 방식이 거의 일치할 뿐만 아니라 지안(集安)에 있는 국내성이나 기타 고구려 성들과 그 구조가 유사함이 드러났다.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ㄷ’자 모양의 수직 홈이 파져 내려가고 그 밑에는 받침돌(確)이 달려 있다든지, 성벽 위에 수직구멍(柱洞 혹은 石洞)이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되는 것, 주 성벽 밖으로 3~4중의 보축 성벽의 존재, 성벽 밖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를 쌓은 것 등은 전형적인 고구려 성의 특징이다.

또 발굴 결과 고구려 계통의 토기와 고구려 양식의 기와편 등도 다수 수습됐다. 다만 은대리성(경기도 기념물 제197호)은 성 하단부에는 석재를 깔았으나 그 위에는 흙으로 쌓은 토축성이었다. 이 성이 석성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이 지역에 전쟁의 위협이 크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요즈음 중국이 만주 일대의 고구려 역사와 유적을 왜곡하고 있어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만주 일대의 고구려 유적도 중요하지만 남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고구려 유적, 예를 들어 서울의 아차산 보루와 임진강 북안의 고구려 보루성에 대해 오히려 더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부분 발굴과 그에 따른 지정만으로 문화재 보호와 보존이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이재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前 육군박물관장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2.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