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골동품 상가를 돌아보던 이강칠 당시 육군박물관장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골동품 상점인 의신호(義新號) 처마 밑에 걸려 있는 근대 서양풍의 군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관장의 눈길을 끈 것은 군복의 옷깃에 수놓아져 있는 은색 별 다섯 개였다.

별 다섯 개라면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원수급 이상의 군복일 수밖에 없었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이관장은 1만5000원에 군복을 일단 구입한 후 문헌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군복의 검은 색깔이나 단추의 배꽃(梨花) 문양은 대한제국(大韓帝國) 군복의 복제와 일치했다. 대한제국 시대의 황제 조칙(詔勅)을 통해 옷깃의 별 다섯 개는 대원수(大元帥) 군복에만 부착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군복이 처음 도입된 것은 고종 32년(1895) 4월 무렵의 일이다. 그 후 광무 3년(1899) 6월22일의 조칙에 따라 황제는 서양식으로 만든 대원수 군복을 평상복으로 입게 됐다.

대한제국의 법률에는 ‘황제는 대원수로 군기(軍機)를 총람하고 육·해군을 통령(統領)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대한제국 육·해군의 통수권자로서 황제의 권한을 상징하는 옷이 바로 대원수 군복인 것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유물임을 확인한 이관장은 좀 더 정확한 고증을 위해 1969년 1월8일 창덕궁(昌德宮) 낙선재를 방문했다.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英親王)의 비(妃) 이방자(李方子)여사로부터 군복에 대한 자문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여사는 자신은 군복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고종황제를 모시던 상궁 중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던 성옥념 상궁을 불렀다.

이관장이 내놓은 군복을 본 성상궁은 “이 옷은 큰 상감(고종황제를 지칭)께서 입으시던 옷이다”며 “어디서 이 옷이 나왔느냐”며 통곡을 터뜨렸다. 이관장이 골동품 상가에서 구입한 군복이 바로 고종황제가 착용하던 대원수 군복이었던 것이다.

최근 기자를 만난 이 전 관장은 “한일합병, 광복,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한제국 황실이 풍비박산이 났다”며 “그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황실 유물 상당수가 소재 불명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전 관장은 “한 국가의 통수권자가 입던 대원수 군복이 시중의 이름 없는 골동품상까지 흘러 들어간 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3.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