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왕들도 한강을 건너야 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는 왕의 도강 행차가 잦았다. 선왕의 능을 참배하거나 온천 나들이가 잦았다. 왕은 그 큰 강을 어떻게 건넜을까. 그러나 도하작전을 연상하면 된다. 지금의 한강대교 자리에 백성으로부터 징발한 배 70여 척을 가로로 이어 묶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면 말 다섯 필이 나란히 서서 건널 수 있는 부교가 된다.

그 임시다리를 놓는 데만 한 달, 푸는 데 한 달씩 걸렸다니까 당시에도 커다란 다리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던 셈이다. 그러나 한강에 첫 다리가 놓인 것은 20세기 초입이다.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용산∼노량진 사이 한강철교가 착공됐다. 1897년이다. 그리고 3년 후인 1900년 준공됐다. 그 후 100년, 한강은 서울에만 21개의 다리를 거느리고 있다.

아직도 다리를 1교·2교· 3교라고 일련번호를 붙여 부르는 곳이 많다. 강원도 춘천의 소양강에는 준공 서열별로 소양1교에서 소양6교까지 있다.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최근 준공한 한강의 다리 이름은 ‘한강21교’가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획일주의·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인 그런 이름을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다. 지명을 따거나 역사적 사건 또는 인물의 이름을 딴 이름이 많다. 철원·연천 지방을 관통하는 한탄강에는 사람의 이름을 따다 붙인 세 개의 다리, 승일교·근홍교·영노교가 있다.

모두 한탄강 단애에 걸쳐 있는 큰 다리일 뿐만 아니라 다리에 새겨진 이름의 주인공들은 모두 6·25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군인들이다. 과거에는 그 다리의 이름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군사정권’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왜 군인의 이름이 다리에 새겨졌느냐는 시비가 일기 시작했다.

승일교는 이 가운데서도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됐다. 구전돼 오는 승일교의 유래는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6·25전쟁 전 그곳은 북한이 통치하던 땅이다. 그때 북한이 절반을 놓고 그 땅을 수복한 후 대한민국이 절반을 마저 놓았다는 다리이니까, 남북 합작의 의미를 둔 그 유래는 그럴 듯한 해석이다. 더구나 그 무렵 남북관계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다리의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주장을 하던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나는 한탄강을 따라 차례로 걸려 있는 승일교·근홍교·영노교가 옛 군인의 이름을 따다 붙인 것은 과거 군인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던 시절이 빚어낸 부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답사하며 쓴 몇 권의 책 속에서도 그 다리들의 이름은 군인들의 역사 조작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다리에까지 군인의 이름을 따다 붙인 것이야말로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다리들에 대해 내가 들었던 것,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 몇 가지를 최근 알아냈다. 한탄강 세 개의 다리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물론 당시의 현역 장군이다. 그러나 그는 즉흥적으로 다리 이름을 짓지 않았다. 세 개의 다리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파헤쳐진 역사적·사회적 자료들도 어마어마했다.

나는 장군은 매우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리들의 유래를 신뢰하기로 했다. 그런 고백과 함께 하마터면 한탄1교·한탄2교·한탄3교가 될 뻔했던 그 세 다리에 대한 유래를 소개하려고 한다. 한탄강에서 군인의 명예가 이유 없이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3.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