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에 소개한 고종(高宗)의 대원수 군복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純宗)의 군복(사진)에도 가슴 아픈 사연이 얽혀 있다.

황제의 사진이나 초상화를 어진(御眞)이라 부르는데 순종황제의 어진도 서너 점 남아 있다. 그중에는 군복 차림의 사진도 있다.

사진 속에서 순종황제가 입고 있는 옷은 광무 4년(1900) 7월에 개정된 대한제국 군복 중 예복(禮服)에 해당한다. 지난회에 소개한 고종 대원수 군복은 평상시 착용하는 상복(常服)이지만 사진 속의 순종 군복은 궁궐에서 개최하는 공식 연회나 외교 사절을 접견할 때 입는 예복이다.

이 예복 사진에는 여러 가지 특이한 점이 많다. 우선 옷깃의 형태와 문양은 황제가 입는 대원수 예복과 일치한다. 하지만 황제의 예복이라면 가슴 중앙이나 소매 끝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이화당초문(梨花唐草紋) 장식이 없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소매에 달린 계급장(수장·袖章)이다. 대한제국의 복제 규정상 대원수 계급장은 인(人)자형 표시가 11개, 원수 계급장은 10개, 육군 대장은 9개가 있어야 한다. 사진 속의 계급장에는 인(人)자 표시가 9개밖에 없다. 순종황제는 응당 입어야 할 대원수 군복이 아닌 육군 대장(大將)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대한제국의 법체계상 황태자(皇太子)라면 계급이 원수(元帥), 황제는 대원수(大元帥)다. 대한제국의 군복 제정 당시 이미 황태자 신분이었던 순종은 원수 군복 내지 대원수 군복 차림의 사진만 남아있는 것이 정상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진 속의 순종은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육군 대장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얽혀 있다.

1910년 8월22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한일합병 조약이 체결됐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일주일 후인 8월29일, 일왕은 대한제국 황제를 왕(王)으로 격하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1910년 12월28일, 일왕은 왕으로 격하된 순종으로 하여금 대원수 군복 대신 육군 대장 군복을 입도록 명령했다.

사진 속에서 순종이 육군 대장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슴 아픈 역사 때문이다. 평범한 듯 보이는 순종의 군복 차림 사진 하나에 나라를 잃은 비극의 역사가 절절이 배어 있는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