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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신화’에 가려진 전쟁의 비극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초.

일본 남쪽의 한 바위섬에서는 인류사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이오지마 전투’로 불린 이 전투에서는 약 한 달 동안 2만2000명의 일본군 병사가 작은 땅 조각을 지키기 위해 단 216명의 생존자를 남기고 모조리 전사했다.

그들을 상대했던 미군 병사들 역시 전사자 약 7000명을 포함, 2만5851명이 사상하는 처참한 결과를 맞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태평양전쟁의 성패가 갈렸으며 일본 제국주의는 완전한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일본군에 승리한 뒤 여섯 명의 해병대원이 이오 섬의 가장 높은 스리바치 산 정상에서 거대한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을 담은 사진은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이미지가 됐다.

그렇다면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 사진 속의 해병대원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거기에 이르게 됐을까.

‘아버지의 깃발’의 저자 제임스 브래들리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는 AP통신 사진 기자였던 조 로젠탈의 사진에 찍힌 해병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진이 찍히기 며칠 전 쏟아지는 일본군의 총탄을 뚫고 부상당한 동료 병사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한 후 후방으로 탈출시킨 공로로 미 해군 십자훈장을 받은 바 있는 용감한 위생병이었다.

그러나 존 브래들리는 1994년 일흔 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가족들에게조차 이오지마 전투에서 자신이 한 일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미국 최고 훈장인 의회 명예훈장 다음가는 해군 십자훈장을 받았다는 것도 숨길 정도였다.

그가 죽었을 때 가족들은 유품을 정리하며 오래된 편지들과 사진들을 발견했고, 아들 제임스 브래들리는 왜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 그 사실을 숨겨 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추적해 들어간다.

이 책은 1945년 2월 23일 낯선 곳에서 이제 막 사선을 넘어 함께 깃발을 치켜들었던, 그리하여 갑자기 영웅이 돼 버린 여섯 해병의 인생사를 담담히 서술해 간다.

사진에 포착된 여섯 해병과 그 전우들이 겪은 입대·훈련·이오 섬 상륙·스리바치 산 전투 등을 차례로 써 나가면서 그들이 맞았던 전쟁의 비극적인 모습을 철저하게 재구축해 간다.

영웅 신화 뒤에 가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 그 전쟁에서 있었던 일들로 고통받으면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신화 사이, 영웅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편 이 책은 발간 이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일본군의 시각으로 그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같은 소재를 미군의 시각으로 그린 ‘아버지의 깃발’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02-515-2000

< 출처 : 국방일보 조진섭, 2007. 2. 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7-02-08 1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