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차렷’ ‘열중쉬어’ 같은 구령법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조선 후기 군대에서 표준으로 사용한 병법책은 ‘병학지남’(兵學指南)이었다. ‘병학지남’ 1권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무릇 각 장수와 병사들은 귀로는 다만 징과 북의 소리만 듣고, 눈으로는 다만 깃발의 방향과 색깔을 볼 뿐이다.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입으로 분부하거든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한다. 가령 높은 관원이나 설사 신(神)이 명령하더라도 결코 따르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조선 시대 군대는 전투 현장에서 말로써 병사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지난 회에 소개한 바와 같이 오직 징과 북·깃발로 명령하는 것이 원칙이었던 것.

조선 시대에 북이나 징·깃발로 구령을 내리고 신호하는 방법은 각 병법 서적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세종 대에 발행한 병법 서적인 ‘계축진설’(癸丑陣說)을 보면 “북을 한 번 치면 벌려 서고 두 번째에 결진하며, 세 번째에 전진하고, 네 번째에 빨리 걸으며, 다섯 번째에 싸운다”고 돼 있다.

반대로 “징을 한 번 치면 싸움을 늦추고, 두 번째에 싸움을 멈추며, 세 번째에 등을 돌리고, 네 번째에 돌아오며, 다섯 번째에 급하게 본진으로 돌아온다”고 돼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군대에서 북소리는 전진 명령을 의미하고 후퇴 명령에는 징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적 원칙이었다.

군대에서 명령이나 신호용으로 사용한 북과 징은 지난 회에 소개한 군기와 달리 실물 유물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북과 징은 군대 외에 백성들이나 아악서·전악서 같은 음악 관련 관청에서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사용한 징의 실물 유물(사진)로는 육군사관학교 구내 육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징에는 ‘삼도대중군사령선’(三道大中軍司令船)과 ‘만력(萬曆) 14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조선 시대 수군이 사용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강칠 전 육군박물관장은 “만력 14년은 1586년에 해당한다”며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진 징이므로 임진왜란 당시에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진귀한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 징은 이런 가치를 감안, 보물 제864호로 지정돼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구령법이 처음 도입된 것은 대한제국 시대다. 현재 국군이 사용하는 ‘우향우’ ‘앞으로 가’(당시 표기는 압흐로 가), ‘세워 총’ ‘받들어 총’ 같은 용어들은 대한제국 군대에서도 사용된 것이다. 현재의 구령법과 조금 다른 것도 있는데 예를 들어 ‘차렷’은 ‘기착’(氣着)이라 했고 ‘열중쉬어’와 ‘쉬어’의 구분 없이 ‘휴식’ 구령만 있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6.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