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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공간서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풍수가들이 땅의 형세를 보고 사람의 길흉을 점친다면 지정학자들은 세계라는 지리적 공간을 놓고 국제정치를 논한다.

영국의 해퍼드 매킨더(1861~1947)가 “동부 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역을 지배하고, 심장지역을 지배하는 자가 월드 아일랜드를 지배하며, 월드 아일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한 것은 지정학자들의 세상 보는 방식을 잘 보여 준다.

고전적인 지정학자들은 지구 여기 저기를 위험한 곳, 가치있는 곳, 중요한 곳으로 분류한 후 그에 걸맞은 전쟁·동맹·군대 배치 같은 국제정치적 행동들을 제시한다. 순수 학문과 현실 정치를 넘나드는 지정학자들의 행동은 세계사적 차원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미국의 해군 전략가로 유명한 알프레드 마한의 주장들도 지정학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독일학자 카를 하우스호퍼의 지정학 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유럽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으로 심문을 받다 자살한 하우스호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정학은 한때 사이비 학문이라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 ‘나치에 봉사한 엉터리 같은 위험한 학문’이라는 딱지를 받은 것이다.

콜린 플린트 미 일리노이대 지리학교수의 저서인 ‘지정학이란 무엇인가’는 지정학이란 학문이 21세기에 어떻게 부활하고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책이다.

한때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됐던 지정학은 이제 다시 정규 학문으로 당당히 복귀하고 있다.

이념 대결이 사라진 복잡한 국제관계의 흐름을 명쾌하게 해석하는 데 지정학이 유용한 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학문적 도구로 지정학이 부활한 것이다.

이 책은 대학 이상급의 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사용할 만한 지정학 개론서다. 특정한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보다 해석하는 방법을 예시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입문서 내지 개설서에 가까운 책이다.

국내에 지금까지 소개된 지정학 관련 서적들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지정학 이론들을 학술사적 관점에서 소개한 책이라면 이 책은 냉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 이슈들을 현대적 지정학 이론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데 치중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한국지정학연구회 소속 현직 교수 8명은 번역자 서문을 통해 지정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변화하는 소용돌이 정치 속에서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적 번영, 그리고 평화·통일로 이어 가야 할 공간관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정학은 바로 이러한 공간관리 전략을 펼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비판적 학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정학이란 학문 자체를 굳이 제국주의적 학문이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지정학이 국력을 극대화하고 효율적으로 영토를 넓히고 관리하는 학문이었지만 21세기의 지정학은 탈식민주의의 비판적 지정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자들은 “미국이나 유럽이 그려 준 세계지도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지정학적 길 찾기가 시작돼야 한다”며 한국적 지정학의 발전 필요성도 역설한다. 02-595-3153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7. 10. 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7-10-04 19: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