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별칭이 활과 관련된 단어에서 나왔을 만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과 인연이 깊다. 고대 한민족의 별칭인 동이족(東夷族)의 이(夷)는 큰 활을 의미하는 대(大)자와 궁(弓)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고구려도 예외는 아니어서 활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고분 벽화가 전해 올 만큼 활과 관련된 문화가 발달했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 고주몽(高朱蒙)의 이름인 ‘주몽’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국사기’는 “주몽은 어려서부터 활 솜씨가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당시 말로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고 했으므로 주몽으로 이름을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책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도 “고구려에서 맥궁(貊弓)이라 불리는 좋은 활이 산출된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고구려 고분에도 말 탄 상태에서 활로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벽화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무용총 벽화에는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유목민족 특유의 사르마티안 사법(射法)으로 사격하는 장면이 남아 있어 고구려의 활 사격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문헌 기록과 벽화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활 자체는 실물 유물이 희귀한 편이다. 활이 나무와 뼈·힘줄 등 쉽게 부패되는 유기 물질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는 1933년 평양에서 발굴된 벽돌 무덤 안에서 발견된 활이다. 이 벽돌 무덤은 353년에 축조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발견된 활은 무려 1600여 년 전의 고구려 활인 것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발견된 활은 완전한 형태가 아니라 뼛조각 형태로 발견됐다. 조사 결과 뼛조각은 소의 갈비뼈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 시대의 활은 쇠뿔로 만들지만 이 활은 쇠뼈로 만든 것이 차이점이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인 중요 무형 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 전수조교 유세현(41)씨는 “평양에서 출토된 활은 비록 재료상의 차이점이 있을지라도 기본적 특성은 조선 시대의 전통 활인 각궁(角弓)과도 통하는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단궁(短弓)이라는 점, 활의 형태가 두 번 굽는 이중만곡궁(二重彎曲弓)이라는 점, 나무·뼈·힘줄 등을 결합해서 만든 합성궁(合成弓)이라는 점 등은 조선 시대 활과 동일하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영국 장궁(longbow)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활은 기본적으로 활의 길이가 긴 장궁(長弓)이며, 한 가지 재료로 만드는 단일궁(單一弓)이다. 반대로 고구려 활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통 활은 길이가 짧아 말 위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성능도 더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6.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