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이 뛰어난 컴퓨터가 개발되고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될수록 컴퓨터 바이러스 제작이나 해킹 기법도 그만큼 진일보한다. 마찬가지로 의학과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빛을 발할수록 이를 악용한 반대쪽 그림자도 길게 드리운다.

최근 독일 언론은 지난 5월 시리아의 군 장교들이 수단 정부 대표자들을 만나 화학전 관련 양국 간 군사 협력을 강화키로 했으며, 실제로 지난 6월 수단 카르툼 지역의 한 병원에서 화학무기 생체 실험으로 의심되는 몇 가지 징후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 지난주 뉴스 중에는 북한이 사린 가스의 원료가 되는 시안화나트륨(NaCN)을 태국에서 수입하려다 대량파괴무기 확산 방지 조치(PSI)에 적발돼 우리 정부에 의해 회수 조치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화학전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께 스파르타군이 아테네를 공격할 때 송진에 유황을 묻혀 태워 만든 유독 가스를 무기로 사용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화학전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이 기간에 무려 11만3000여 톤의 화학 무기가 사용됐다는 보고도 있다.

일례로 1915년 벨기에의 이프르 전선에서는 독일군이 보낸 염소 가스로 인해 프랑스·캐나다 연합군 5000여 명이 질식사하고 1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악명 높은 731부대에서 ‘마루타’라 불리는 생체를 실험해 독가스 개발에 매진했고 독일의 나치 정권은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독가스를 사용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0년대 이란과의 전쟁에서 화학 무기를 사용해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으며 88년에는 이 방법으로 7000여 명의 쿠르드족 학살을 자행했다. 후세인은 ‘이스라엘의 핵무기’에 ‘가난한 자의 핵무기’인 화학 무기로 맞서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대량살상무기(WMD)에 집착했으나 결국 미국에 이라크 전쟁 발발의 또 하나의 정당성만 부여했다.

95년 3월 일본 도쿄에서는 일본 내 사이비 종교 단체인 ‘옴 진리교’ 신도들이 지하철 역에 사린 가스 등을 살포하는 사고가 발생, 12명이 사망하고 5000여 명이 부상했는데 과거와 달리 국가가 아닌 단체에 의한 생화학 테러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전세계가 경악했다.

핵무기 못지않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면서도 대량 제조가 비교적 쉽고 값이 싼 화학 무기에 매료된 국가나 집단이 존재하는 한 지구상의 어느 곳도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다.

앞으로의 전쟁에서 WMD가 사용될 가능성이 커질수록 지난 20일 창설 51주년을 맞은 화학병과의 역할 또한 커진다.

화생방전에 대비한 민·관·군의 긴밀한 협조 체제가 더욱 절실하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9.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