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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왜 1945년에 패망했나?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 <노나타 이쿠지로 외 공저/주영사 펴냄>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은 하와이 진주만에 자리 잡은 미 해군기지를 공습,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같은 달 25일 홍콩의 영국군이 일장기 앞에 무릎을 꿇었고, 1942년 1월에는 필리핀의 루손 섬도 속수무책으로 일본군에 굴복했다. 1942년 3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까지 일본의 판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일본군은 무적의 군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처럼 무적처럼 보이던 신화는 이후 3년간 미군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일본군도 처절하게 패전하고 몰락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의 도시마저 미 공군의 네이팜탄과 원자폭탄에 의해 초토화됐으며 결국 국가 차원의 무조건 항복이라는 밑바닥으로 전락했다.

일본군이 찬란한 성공의 턱밑에서 이처럼 처절한 몰락의 길로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담은 책이 바로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다.

일본이 패전의 길로 빠져든 이유를 한두 가지로 특정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 과학기술 수준의 차이 등 온갖 종류의 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처럼 그 수많은 이유 중에서도 일본군 자체 조직 차원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단초는 1942년 미드웨이 해전 때부터다. 일본과 미국의 항공모함부대가 정면 대결한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의 흐름을 뒤바꿀수 있을 만큼의 결정적 전투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미 해군에 참패했다.

문제의 출발은 지휘부에서조차 작전의 목적에 대한 합의와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 야마모토 연합함대사령관은 미 항모를 유인해 격멸하는 것을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지만 나구모 제1기동부대 사령관은 미드웨이 섬 점령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지휘부에서조차 동상이몽인 상태에서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정보전의 실패와 지나친 공격 위주의 사고, 피해 복구 준비의 부족이 겹치면서 일본 해군은 참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일본 육군이 참패를 당한다. 이곳에서의 참패 원인은 일본군의 전략적인 큰 그림이 부족했기 때문.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육군과 해군의 전략 방향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군과 해군은 자기만의 생각을 고집할 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합동성을 극대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구나 현장 의견을 계속 무시하는 강압적이고 탁상공론 수준의 지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1944년 시작된 임팔작전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육군이 붕괴하는 출발점이 된 전투다. 임팔작전은 일본군의 조직원리상 약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전투였다. 막연하게 잘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안일함과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지 않을 때의 우발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은 오만함이 겹치면서 일본군은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더 나쁜 것은 작전이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그 누구도 작전 중지를 건의하거나 명령하지 못했다는 것. 예하 지휘관은 체면 때문에 차라리 상관이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줄 것을 원했고, 상관은 반대로 예하 지휘관이 공격 중지를 건의하기를 기다렸다. 이처럼 감정적이고 지나치게 온정적일 뿐만 아니라 합리성이 결여된 의사소통 속에서 수많은 일본군 장병들은 정글 속을 헤매다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일본과 소련 사이에 벌어졌던 노몬한 충돌사건, 레이테 해전, 오키나와 전투 등 총 6가지의 전투 사례를 통해 일본군이 조직 차원에서 어떤 문제 때문에 패배했는지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일본군의 패배에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는 합리적이기보다 분위기에 좌우되는 전략수립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일정한 원리나 논리보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판단이 많았다는 것.

계획된 작전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우발계획이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다. 계획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급변하는 전장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대로 주요 단위 지휘관이 기본적인 작전계획을 독단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빈발했다.

상하 간, 혹은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이 마비된 조직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실패를 반복하는 등 실패로부터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우리로서는 1945년 일본군과 일본제국의 몰락이 너무도 다행한 일이었지만 하나의 교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군의 몰락사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일본군이 겪었던 실패의 길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어떤 군대라도 범할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방위대학교 교수와 민간 경영학자들이 공동저술한 이 책은 1984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100쇄가 나왔을 만큼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국내에서도 이미 1980년대에 ‘일본군부몰락사’란 제목이 번역된 적이 있지만 30여 년 만에 좀 더 깔끔한 번역과 편집으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다는 점에서 군사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 만하다.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9. 8. 13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9-08-13 18:3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