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을 각인시킨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리처드 후커가 쓴 ‘MASH’(Mobile Army Surgical Hospital)라는 제목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로버트 올트먼이 70년에 만든 같은 제목의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활약한 이동외과병원(MASH)을 주 무대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다른 전쟁 영화들과 달리 우스꽝스러운 대화 속에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의미와 함께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어 평론가들 사이에서 주목받았으며 그해 칸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이후 미국 CBS 방송국이 72년부터 83년까지 무려 251회에 걸쳐 TV 시트콤으로 제작, 절찬리에 방영됐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이 이 영화를 보면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영화에 나오는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인은 한결같이 베트남 의상 같은 것을 입고 있고 어디를 봐도 한반도 같지 않은 배경에 기분까지 언짢아진다.

또 이동외과병원에서 일하는 군의관이 모두 미국인이지만 실제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의관이 훨씬 많았던 점, 영화에서처럼 당시에는 흑인 군의관이 없었다는 점 등 옥에 티를 말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우리 한국인이 보기엔 이렇게 형편없는 영화가 미국 영화사에서는 블랙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동외과병원의 최초 창안자는 심혈관 외과의 선구적 의사인 미국의 드바키(Michael E DeBakey)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 입대, 미 육군 외과통합병원의 군의관으로 일하게 된다.

군의관 생활 동안 부상병들을 돌보면서 좀 더 빨리 부상병들에게 접근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이동 야전 의무 부대 개념인 이동외과병원의 창설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이 병원은 숙련된 의료인들을 전방에 배치해 좀 더 빨리 부상병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고안돼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큰 활약을 펼쳤다.

아시아에서도 이동외과병원의 역할은 대단했다. 1933년 10월 미 6육군단에 창설된 43이동외과병원은 알제리와 인도·미얀마·중국 등지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해 활약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는 8055이동외과병원이 대전을 무대로 활동했으며 전세가 역전되자 평양 주위의 20여 개 지역에서 의무 지원을 펼치면서 하루 평균 150여 명의 환자를 수술했다.

또 1964년 9월11일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여 명과 태권도 교관단 10여 명이 부산항을 출발, 베트남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우리 군의 최초 해외 파병이라는 역사를 남겼다.

하지만 현대전의 양상이 자꾸 변화하면서 이동외과병원의 효용성에도 일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를 처음 도입한 미국에서조차 최근 들어 이동외과병원을 해체하고 대신 전투지원병원(Combat Support Hospital)이나 전방외과팀(Forward Surgical Team)과 같은 개념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동외과병원은 20세기의 시대적 소임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1.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