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치열하던 1960년대 서방 정보 기관은 카스피 해를 시속 500km로 날아다니는 괴물체 파악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워낙 빠르니 배라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배제됐고 수면을 날아다니니 레이다에 쉽게 잡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주인들의 미확인 비행 물체(UFO)이거나 날아다니는 공룡이 우연히 살아남은 것이라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통상 카스피 해의 괴물로 소개되는 사진은 66년에 처음 선보인 KM 시리즈다. 이 비행체들은 비행기같이 보이지만 국제 해사 기구가 공식적으로 배로 분류하며 통상 WIG선이라고 부른다.

당시 WIG선 연구는 러시아의 알렉세예프와 독일의 리프쉬가 서로 다른 접근 방법으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기술은 수중익선과 유사하게 날개가 수면 아래로 내려서는 개념이었고 독일은 수면 바로 위를 나는 비행기에 보다 근접한 형태였다. 구소련은 엄청난 비용을 투자, 125톤급 Orlyonoks를 해군에 실전 배치했지만 사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연구는 구소련이 주도했지만 정작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은 미국이다. 미국의 신군사 전략은 모든 국지 분쟁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첨단 기술에 의한 항공기와 선박이 필수적이다.

2003년 5월 오키나와의 미 해병 1개 대대를 싣고 하루 만에 포항에 상륙한 고속 수송선(HSV-1)은 사실 호주가 개발한 상용선을 미국이 군사용으로 사용한 예다.

호주가 초기 모델을 99년 동티모르에 투입하자 미국은 군사용으로서의 가능성을 매우 높이 평가해 후속 모델인 TSV를 2002년 11월 미 육군에, 더 발전된 HSV-2는 2003년 8월 미 해군에 인도했다. TSV의 경우 완전 무장한 병력 1000명과 500톤의 장비를 싣고 안전 순항 속도 45노트로 달리는 수준이다. TSV는 WIG선 기술의 영향을 받아 수심 3m 정도만 확보되면 접안이 가능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는 말을 여기서도 실감한다. 구소련이 엄청난 돈을 투자, 개발한 카스피 해의 공룡은 미국 군사 전략의 주인공으로 부활해 태평양을 누비고 있다. 앞으로 이 공룡의 후손들은 세계 해운 업계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고속 민간 수송선으로 지구의 모든 바다를 누비게 될 것이다.

세계 해운 물동량의 11%를 사용하는 한국으로서 이 현대의 공룡 이야기가 어찌 남의 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 1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