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한국과 미국이 한·미동맹이라는 우산을 함께 써 온 지 50년이 흘렀지만 막상 미국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진면목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03년에 브루스 버코위츠 박사가 ‘전쟁의 새로운 얼굴’이라는 저서에서 세계의 군사력을 비교하면서 7500억 달러, 3800억 달러, 3.2%라는 세 개의 숫자를 강조했다.

7500억 달러는 2003년 세계 모든 국가의 국방비를 합한 누계이고 미국의 국방비가 3800억 달러이다 보니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국방비를 합한 3700억 달러가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국방비보다 적다는 결론이 나온다.

2004년의 경우 국방 예산이 4013억 달러이고 추경 예산으로 충당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사용한 875억 달러까지 포함하면 거의 5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 사회에서 군사력의 현주소다. 물론 돈을 많이 쓴다고 강한 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력을 이야기할 때 흔히 핵무기나 항공모함 이야기를 많이 한다. 600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소형 항공모함이라도 한 척 가진 나라가 불과 10개국 남짓한데 대형 항공모함 12척을 보유하고 있으니 무리는 아니다.

미국에서 강습 상륙함으로 분류하는 타라와(Tarawa)급 LHA 5척과 와스프(Wasp)급 LHD 7척은 거의 경항공모함 수준이며 실제로 항공모함으로 사용하다 전환시킨 사례도 있다.

미 공군이 보유한 F-16 1739대, F-15 736대도 대단한 전력이지만 해군이 보유한 F/A-18 호닛 877대 역시 가공할 만한 전력이다. 그러니 미 해군 항공대가 “지구 상에서 우리와 상대할 수 있는 군대는 미국 공군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허풍만은 아니다.

그러나 무기의 양과 질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너무 싱겁다. 그리고 옳지도 않다. 미국의 군사력을 최강으로 꼽는 보다 근본적 원인은 한 세대를 앞서가는 기술력 격차와 전세계에서 흘리는 피와 땀의 결과다. 21세기 들어 미국 국방 예산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연구개발비의 급증인데 획득 예산의 71%에 달한다.

획득 예산과 연구개발비를 합한 규모는 전체 예산의 30%를 상회하는데 이는 바로 ‘미래의 우위를 현재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무형적인 요소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현대전을 정보전이라 할 때 흔히 인공위성이나 지휘통제 시스템을 거론하지만 인간의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행하고 있는 FAO(Foreign Area Officer)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100명 이상의 각 지역 전문 장교들이 배출되는데 이들이 지속적으로 흡인하는 정보는 수많은 미국 유학생들이 토해 놓고 가는 정보와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책 구사 능력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점인데 국방부의 대외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차관실의 인력 규모가 700명에 달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연하게 개입하고 있는 점도 유형 자산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유무형의 자산을 떠받치는 힘은 땀과 눈물을 마다하지 않는 풍토에서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풍부한 전투 경험을 축적한 나라가 미국이다. 일각에서는 맹목적인 반미 정서에 경도돼 이 부분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잘 싸우지 못하는 군대는 존재 가치가 없다.

현대전이라는 미명 하에 넥타이 매고 미사일 버튼만 잘 누르면 이길 수 있는 전쟁은 없다. 땀과 눈물을 마다하지 않는 풍토가 펄떡펄떡 살아 숨쉴 때 비로소 전쟁의 참화를 미연에 방지하는 억제력도 나오는 법이다. 돈과 인력이 부족한 작은 군대가 얼마나 매섭고 당찬 집단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는 피와 눈물을 마다하지 않는 문화적 풍토를 얼마나 살려 내는가에 달려 있다.

<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2. 23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