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7월16일 미국 뉴멕시코 주의 트리니티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뒤바꿀 실험이 펼쳐졌다. 암호명은 ‘트리니티’. 세계 최초로 핵실험이 벌어진 것인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트리니티 사막의 모래와 돌은 핵의 강한 열에 의해 녹아 버렸고 이 위력은 독일군이 런던 대공습 때 사용한 폭탄 전체 양과 맞먹는 것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그해 8월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결국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종결됐다. 그러나 이날의 폭격으로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냉전의 시작을 알리듯 미국의 핵에 자극받은 소련은 49년 8월29일 핵실험에 성공한다. 그러나 현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세미팔라틴스크 주에서 핵실험이 있은 뒤부터 이 지역에서 사산율이 증가했고 신생아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기형아가 태어났다.

경쟁적으로 미국도 핵실험에 박차를 가한다. 46년에도 태평양 마셜 제도의 비키니 섬에서 실험은 계속됐고 네바다 주에서만 51년 이래 600회가 넘는 핵실험이 이뤄졌다. 실전에 대비해 미군 20만 명이 현장에 동원됐다. 이들에게는 핵폭발 직후 총기의 분해와 조립, 목표지로의 진격과 같은 임무가 주어졌다.

비록 개인별로 방사능 피폭량 측정을 위한 기구가 지급됐지만 낙진의 유해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특별한 보호 장비 없이 군인들은 핵폭발 직후 먼지 구름을 향해 뛰었다. 이때 들이마신 방사능으로 허파와 림프 조직이 오염됐다.

원자폭탄을 둘러싼 개발 경쟁은 수소폭탄의 등장을 앞당겼다. 54년 3월1일 비키니 섬에서는 ‘브라보’라고 명명된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다. 폭발 위력이 15메가톤으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750배에 달했다.

이 폭발은 수백만 톤에 이르는 비키니 만과 주변 3개 섬의 모래와 식물, 수중 생물들을 물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치게 했고 주위 7000마일의 태평양에는 낙진이 떨어졌다.

당시 폭발 지점으로부터 90마일 떨어진 곳에서 항해 중이던 일본 참치잡이배의 한 선원은 강렬한 섬광을 보고 서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른다고 소리쳤는데 이때가 새벽 3시50분쯤이었다. 세 시간 가량 지나자 갑판에 하얀 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선원들은 눈의 통증과 두통·구역질을 호소했다.

선원들은 2주 뒤 일본으로 귀항했지만 화상과 탈모에 시달렸고, 수소폭탄인 줄 모르는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비키니 섬에서 원자폭탄으로 인해 선원들이 피해를 본 것 같다는 기사를 실어 원자폭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일본인들을 경악케 했다.

23명의 선원 가운데 40세의 선원 한 명은 일본 주둔 미군 군의관의 곧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혼수 상태에 빠져 피폭 206일 만에 숨을 거뒀다.

이후 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등의 사고를 통해 핵과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은 민간의 연구에서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지난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반도에 쏠리고 있다. ‘지구 종말 핵시계’(Doomsday clock)의 분침은 2002년 이후 자정 7분 전으로 고정돼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2. 2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