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모 지상파 TV의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군대에 가서 눈물 흘린 기억을 물었는데 예상대로 화생방 실습 때 흘린 눈물이 순위에서 빠지지 않았다. 연기 자욱한 좁은 공간에서 서둘러 방독면을 써 보지만 흐르는 눈물과 콧물은 어쩔 수 없다.

실전에 사용되는 화학작용제는 작용 기전 등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또는 그 이상으로 분류된다.

신경작용제는 기체나 액체 상태로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와 신경을 마비시킨다. 이 작용제에 노출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침을 흘리고 구토하다가 의식을 잃는다. 따라서 환자에게 빨리 신경해독제를 주사하고 필요하면 인공호흡을 해야 한다.

마늘이나 겨자 냄새가 나는 수포작용제에 노출되면 피부가 벌겋게 되면서 물집이 생긴다. 눈에는 염증을 일으켜 충혈이 생기고 심지어 실명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작용제가 눈에 닿으면 빨리 물로 씻어 내야 한다.

혈액작용제는 보통 가스 형태인데 복숭아씨 냄새가 나고 노출되면 수초 내로 경련이나 마비가 일어나며 숨쉬기 힘들어진다. 질식작용제는 눈과 피부, 기도를 자극시켜 기침, 목의 통증,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무능화작용제에 노출될 경우 처음에는 맥박이 빨라지면서 입이 마르고 의식이 흐려지며 체온이 올라가게 된다. 이 외에도 구토를 일으키거나 눈물·콧물을 유발하는 화학작용제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화학작용제에 대한 지식은 제1차 세계대전때 화학 무기의 등장을 계기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비인도적인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견제와 자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이란군과 쿠르드족을 향해 겨자계 수포작용제와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 그런데 화학 무기가 더 이상 한 국가와 군대의 전유물은 아닌 것으로 돼 버렸다. 1995년 일본에서 사린을 이용한 테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화학 무기가 사용되면 속수무책으로 죽은 이들을 땅에 묻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는 반대의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수액 요법이나 기관 삽관술·항생제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제1차 세계대전 때 겨자계 수포작용제나 질식작용제에 노출된 미군의 사망률은 1.9%에 머물렀다.

당시 재래전에서의 부상으로 인한 사망률이 7%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수치다. 95년 일본 도쿄에서 사린 테러가 일어났을 때에도 5500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았지만 이 가운데 80%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사망자도 12명에 그쳤다. 화학작용제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신속한 대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테러 집단이 화학 테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꼭 많은 사상자의 발생만은 아니다. 그보다 테러라는 충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으로 통하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서 유독 가스와 생화학 테러를 전담할 화학 소대가 지난 2일 창설됐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제공항의 안전 강화에 대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소대는 화생방 정찰차와 차량용 방사능 측정기·휴대용 화학 탐지기는 물론 제독차·제독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준비된 부대다. 빠른 판단과 적절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역사를 보면서 화학 소대가 공항의 안전을 책임질 든든한 파수꾼이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

〈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무실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3. 1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