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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영웅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

특별부대 제안…대대급 부대 지휘 위해 스스로 계급 낮춰

[ 사진설명 ] 6·25 전쟁 당시 유엔군 프랑스 육군대대를 이끌었던 랄프 몽클라르(왼쪽) 중령이 야전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가보훈처

멀리 바다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검푸른 바다에 둘러친 하나의 띠 같았다. 그 위로 듬성듬성 11월의 눈을 끌어안은 푸른 산들이 보였다. 수송선 ‘제너럴 블랙호’에 몸을 실은 병사들은 제2의 조국이 되다시피 한 한국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우리는 3년 동안 한국 땅에 주둔하면서 맺었던 인연들을 끊고 또 미군 부대 형제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우리 전투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본부중대 위생병들에게서도 멀어졌다. 또 한국인들과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눴다. -1953년 11월 몽클라르 수기 중-

▲ “중령이라도 좋다”…한국 위해 스스로 계급을 낮춘 남자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자신이 쌓아온 명성을 상징하는 계급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수호를 위해 스스로 계급을 낮춰가며 6·25전쟁에 참전했던 벽안(碧眼)의 백전노장이 있다. 유엔군 프랑스 육군대대를 이끌었던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1892~1964)가 그 주인공이다.

몽클라르의 본명은 라울 마그랭-베르느레(Raoul C. Magrin-Vernerey)다. 몽클라르라는 이름은 나치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서 자유프랑스군으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가명이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몽클라르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백전노장이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육군 중장이었던 그는 복잡한 국내 사정을 이유로 참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비역과 현역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미 육군 보병대대 규모의 특별부대를 창설하자고 제안한다. 또 대대급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스스로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낮추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몽클라르의 강한 의지로 프랑스는 1950년 8월 24일 그를 대대장으로 한 유엔군 프랑스 육군대대를 창설, 파병을 결정했다. 중령이 된 몽클라르가 이끄는 프랑스대대는 같은 해 11월 29일 부산항에 도착, 미 2사단 23연대에 배속됐다. 현지 적응을 마친 프랑스대대가 맞은 첫 전투는 1951년 1월 원주 부근 전투였다. 얼어붙은 맨땅에서 휘몰아치는 칼바람을 맞으며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적의 기습공격에도 프랑스대대는 꿋꿋이 버텨내며 전장을 사수했다.

[ 사진설명 ] 프랑스 육군대대가 벙커에서 방어준비를 하고 있다.

▲ 백전노장의 악전고투, 6·25전쟁의 국면을 바꾸다

프랑스대대의 명성을 드높인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 사이에 벌어진 지평리 전투다.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중공군을 상대로 얻은 첫 승리인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전세를 반전시키며 재반격을 하게 된 기틀이 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2월 13일 미 23연대와 프랑스대대는 중동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경기 양평군 지평리에서 중공군 3개 사단(약 3만 명)에 의해 완전히 고립되는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프랑스대대는 나팔과 피리를 불며 돌격해오는 중공군의 맹공에 맞서 지평리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사흘간의 격전에서 프랑스대대는 근접전투와 백병전을 감행해가며 중공군을 격멸했다. 특히 진지에 진입한 중공군을 맞아 철모를 벗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동여맨 채 총검과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백병전을 벌이는 프랑스대대의 모습에 중공군이 기가 질려 후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프랑스대대는 한반도에서도 가장 험난한 중동부·서부전선의 최일선에서 전투를 치렀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지평리 전투는 물론 화천 저수지 전투, 쌍 터널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티-본(T-Bone)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대 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치며 적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프랑스대대의 분투는 ‘명장’ 몽클라르 중령의 지휘력과 최정예부대 출신 부대원들의 강한 전투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몽클라르는 1964년 세상을 떠났다.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군사박물관인 앵발리드에서 열린 장례식을 직접 주관, 예우를 표시했다.

몽클라르는 생전 자신의 마지막 전장이었던 한국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딸인 파비엔느 몽클라르(64) 씨는 “아버지는 ‘언젠가 한국인이 내 무덤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생면부지의 땅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계급을 낮춰가며 참전한 몽클라르의 이야기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념, 용기를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싸운 그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사진설명 ] 박한빈(대령·아랫줄 가운데) 육군75사단 부사단장 등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프랑스 파리 랄프 몽클라르 장군 묘를 방문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박한빈 대령

몽클라르 장군 묘 참배 박한빈 육군75사단 부사단장 - ˝장군의 헌신 결코 잊지 않을 것”

“세계 각지에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몽클라르 장군은 그 대표적인 예지요. 이런 분들의 헌신을 잊지 않고 친분을 쌓는 것이 국격 상승과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이 아닐까요?”

“언젠가 한국인들이 내 무덤을 찾아올 것”이라던 ‘지평리 전투의 영웅’ 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든 박한빈(대령) 육군75사단 부사단장은 “몽클라르 장군 묘 참배는 한국이 감사를 아는 민족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박 부사단장은 지난달 10일 김성수 법무법인 아태 대표변호사, 김완배 전 육군 준장, 김덕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정희주 전 대우상용차 대표이사 등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지평사모) 회원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의 생 루이 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된 몽클라르 장군의 묘를 찾았다.

박 부사단장은 지난 2008년 프랑스 무관으로 부임한 뒤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군사교류를 위해 힘썼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몽클라르 장군의 이야기는 그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고 한다. 장군의 전기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딸 파비엔느 몽클라르 여사 가족과도 친분을 다졌다.

“아버지의 군인정신을 알리고 싶어하던 파비안느 여사였지만 프랑스에서 책을 발간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평사모 회장인 김 변호사가 발간을 도왔습니다. 저와 지평사모, 몽클라르 장군 가족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죠.”

박 부사단장과 지평사모 회원들은 한국인들의 방문을 기다린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박 부사단장은 “파비안느 여사는 특히 헌화에 국가보훈처장, 6·25 유엔참전협회장의 이름이 함께 들어갔다는 점, 즉 한국이 장군의 헌신에 감사한다는 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참전한 각국 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데 국민 모두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이 60년 전 도움을 준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과 연결된다면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 모두가 동참했으면 합니다.”

< 출처 : 국방일보 맹수열, 2015. 7. 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07-08 09:3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