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亂中日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쟁 중에 쓴 일기로 한국 전쟁 기록 문학 중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20세기 이후에는 군인들의 전쟁 회고록이 쏟아지고 있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군인이 전쟁 중에 쓴 전쟁 기록물은 흔치 않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기록을 남길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기도 쉽지 않거니와 그만한 문장력을 가진 군인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된 전란 중 수많은 무장이 무수한 전투를 치렀지만 스스로 기록을 남긴 경우는 거의 없다. 군인이 쓴 종군일기라고 할 만한 작품은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거의 유일하다. 의병장이 쓴 작품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에도 ‘예교진병목록’ 정도가 있을 뿐이다.

삼국·고려 시대의 경우 군인들이 직접 쓴 전쟁 기록물은 하나도 전해 오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도 제2차 나선 정벌(1658년)을 기록한 신유(申瀏) 장군의 ‘북정일기’ 정도가 종군일기의 사례로 추가될 수 있다.

군인들의 종군일기가 전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군인의 시각으로 본 전쟁사와 일반적인 문신 관료나 문필가가 쓴 전쟁사는 전문성에 있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난중일기’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대전쟁인 임진왜란 현장에서 썼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난중일기’에는 전쟁 기간 이순신 장군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전투 자체에 대한 기록은 다른 기록에도 나오지만 치밀한 전투 준비 상황은 ‘난중일기’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유비무환의 진중 생활, 엄격했던 군기 통제, 정치 상황에 대한 고뇌, 가족에 대한 사랑도 ‘난중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가치를 감안,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전쟁 보고서인 ‘임진장초’와 함께 국보 제76호로 지정돼 있다.

‘난중일기’는 두 번이나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뻔한 위기가 있었다. 1930년대 초반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인 이종옥씨가 일본계 은행에 많은 부채를 졌다. 담보로 잡힌 현충사와 장군 묘소 부지까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심지어 한 일본 황족은 ‘난중일기’를 넘기면 일제 벼슬자리를 주겠다고 이씨에게 제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자 1932년 전 국민적 성금 모금 운동이 일어났다. 그 덕에 이순신 장군의 종손이 진 부채를 갚고 현충사와 ‘난중일기’도 지켜 냈다. 나라를 잃은 상황이었지만 ‘난중일기’만은 지켜 낸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1967년 12월31일에 찾아왔다. 유근필 등 문화재 절도범 6명이 현충사에 침입, ‘난중일기’를 훔쳐 간 것. 국가적 보물이 도난당하자 온 나라는 충격에 빠졌다. 절도범의 자수를 권고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담화까지 발표됐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해 1월9일 일본으로 반출되기 직전 절도범이 모두 체포돼 ‘난중일기’를 되찾게 됐다.

‘난중일기’라는 이름 자체를 이순신 장군이 직접 지은 것은 아니다. 정조대에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을 집대성,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처음으로 ‘난중일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난중일기’는 친필 원본과 목판본으로 재정리한 이충무공전서본 등 두 종류가 있다. 이충무공전서본에 포함된 ‘난중일기’는 친필 원본과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건 자체를 누락시킨 경우도 많다. 반대로 이충무공전서본 ‘난중일기’에는 포함돼 있으나 원본에는 없는 내용도 있다. 원본의 해당 부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난중일기’의 한글 번역본은 1960년대에 처음 출간됐지만 친필 원본과 이충무공전서본의 상호 대조를 거친 완전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10년도 되지 않았다.

최두환 해군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과 박혜일 교수 등의 개별적인 노력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완역본 ‘난중일기’가 나오게 됐다.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요, ‘난중일기’였지만 막상 제대로 된 번역본이 나온 것은 너무 늦었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5. 1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