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1군 사령관 클루크는 개전 초 상황을 낙관했다. 파리는 눈앞에 있었고 프랑스군의 역습은 저지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적의 얕은 방어선을 돌파하면 파리까지 거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1914년 9월8일 저녁, 클루크는 예하 지휘관들에게 선언했다.

“내일은 적을 포위 공격해서 끝장을 낼 걸세!”

1914년의 전쟁이 1870년의 보불전쟁과 같은 국지전으로 끝날 절호의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순간에 벌어진 독일군 총참모부 수뇌부의 혼란은 모든 역사를 뒤집어 놓았다. 6주 만의 승리 계획은 4년 여에 걸쳐 3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변질되며 유럽의 모든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

1914년 독일의 대 프랑스 침공 계획은 전임 참모총장이던 슐리펜 백작이 세운 이른바 슐리펜 계획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었다. 담대한 기동을 통해 포위 섬멸전을 유도하는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베르덩 서쪽에서 독일군 4개 야전군은 빠르게 전진했다. 독일군은 8월 중순 벨기에 국경 요새 지대를 돌파한 이래 프랑스군과 영국 원정군을 열흘 넘게 밀어붙이며 9월 초 마른 강을 넘어 파리 동쪽 50㎞ 지점까지 육박했다. 클루크의 독일 제1군은 파리를 포위할 태세였고 프랑스 정부는 남부의 보르도로 수도를 옮겼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프르는 이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반격을 명령했다. 오랜 퇴각으로 지친 프랑스 제5·6군과 영국 원정군에게 어떻게든 독일군의 주력인 제1군을 막아내라고 다그쳤다. 이에 독일 제1군 우측 면에서 프랑스 제6군 15만 병력이 9월6일부터 반격에 돌입해 전선을 위협했지만 클루크의 대응은 침착했다.

내선의 이점을 살려 마른 강 이남으로 전진하던 4개 군단을 순차적으로 불러올려 3일 만에 우르끄 강으로 쇄도하는 프랑스 제6군을 저지하고 주도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독일군 4개 군단이 빠져나간 공백을 프랑스 제5군과 영국 원정군이 과감히 파고들었다. 이곳은 독일 제1군과 제2군의 경계선이었기 때문에 단 2개 기병사단만이 방어하던 취약한 곳이었고 영불연합군의 진격과 함께 두 야전군의 간격은 급속히 벌어지고 있었다.

작전 전개 상황에 못내 불안해 하던 독일군 참모총장 몰트케는 이 위기를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여 총참모부 정보국장 헨취 중령에게 전선 현황을 파악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한다.
헨취는 제2군 사령부에서 참모들과 숙의 끝에 마른 강 전선에서 60㎞ 후퇴해 애느 강에 방어선을 확보한다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슐리펜 계획이 눈앞에서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두 야전군의 간격은 매우 컸지만 몰트케에게 슐리펜 계획을 관철한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클루크가 호언했듯이 프랑스 제6군은 붕괴 직전에 몰려 독일 제1군이 역포위하면 섬멸시킬 수 있었다. 이 여세를 몰아 독일 제1·2군이 영불연합군을 협공했다면 파리 외곽의 수비망은 붕괴되는 치명타를 입을 뻔했다.

이 전투는 일선 지휘관이 작전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깊이 생각하고 세심한 준비에 진력해야 하지만 일단 실행에 들어가서는 설혹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전략적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휘관의 판단 착오는 마른 전투와 같이 한 번의 전투 패배로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망과 역사를 뒤흔드는 뼈아픈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7. 1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