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여름, 영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프랑스는 독일군의 공세 앞에 6주 만에 무너졌고 프랑스에서 간신히 철수한 영국 원정군은 대부분의 장비를 잃었다.

영국은 16세기 이래 강력한 해군에 기대어 스페인의 아르마다(무적함대)와 프랑스의 그랑다르메(대육군)의 침공을 저지해 낸 자부심을 가진 나라였다. 대륙과의 사이에 가로놓인 바다는 영국을 지켜 주는 든든한 성채였다.

그러나 이 당시 독일 공군 전력은 막강했다. 독일 공군은 영국 상공의 제공권을 확실하게 뺏고 지상군 상륙을 엄호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1940년 8월13일, ‘독수리의 날’로 명명된 작전 개시일부터 독일 공군의 폭격기들은 영국 레이더 기지를 강타했다. 이어 24일부터 영국 공군 비행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국의 전략적 운명을 건 항공전이 영국 상공에서 막이 올랐다.

독일 공군의 예상은 매우 낙관적이었다. 그들은 영국 전투기가 총 900대 전력에 675대 정도가 작전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독일은 이중 매월 300대를 격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영국이 최대 매월 200대의 전투기를 생산해도 매월 100대 이상 전력이 감소, 3개월 안에 제공권 확보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비행장 폭격과 함께 영국 공군은 기지를 내륙으로 이동시키면서 기세가 한층 꺾인 듯 보였다. 독일은 영국이 손실을 견디다 못해 전력을 보존하고자 일부러 전투를 회피한다고 판단, 출혈을 강요하기 위해 9월7일부터 소모적인 런던 폭격을 감행했다.

이후 1주일 동안의 대격전에서 독일은 298대의 항공기, 영국은 120대의 전투기를 잃었다. 15일 독일은 158대의 폭격기를 동원, 런던에 대한 최후의 주간 대공습을 감행하지만 그들을 맞은 것은 300대 이상의 영국 전투기였다. 이날 하루만도 독일은 80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영국 공군의 위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독일은 당황했고 그 원인은 곧 드러났다. 영국 공군의 보충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영국은 매월 450~500대의 전투기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또 폴란드·프랑스 출신의 조종사를 충원받아 1400명이 넘는 전투기 조종사를 유지했다. 빠르게 전력을 소모당한 것은 영국이 아니라 오히려 독일이었다. 잘못된 추산을 바탕으로 작전에 돌입한 독일 공군은 제공권 장악은커녕 9월까지 무려 1887대의 항공기를 잃고 물러서야 했다.

전쟁에서는 끊임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마련이지만 근거 없는 낙관은 금물이며 자신의 능력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영국 항공전에서 독일은 수적인 우세가 불분명한 데다 적진에서 싸우는 불리함까지 안고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에 의존, 소모적인 작전에 집착했다.

영국 항공전의 패배로 독일은 전략적인 목표를 크게 수정해야 했으며 영국은 절망에서 벗어나 기사회생하는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7. 2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