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8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80여 일간의 전투 끝에 독일군은 붕괴, 변변한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패주했다.

제21집단군 사령관인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는 서유럽 전선의 영연방군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승리의 냄새를 맡은 그는 전쟁을 크리스마스까지 끝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군의 가용한 자원을 모두 자신에게 모아 네덜란드에서 라인 강을 도하, 독일 산업의 심장부 루르로 진격해 치명타를 날릴 계획을 수립했다. 그 일환으로 대규모 공수부대를 동원, 영국군의 진격로를 확보하기 위한 마켓 가든(Market Garden) 작전이 입안됐다.

1944년 9월17일, 연합군 제1공수군 예하 영국군 1공수사단, 미군 82·101공수사단의 1만9000여 병력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아른헴에 이르는 지역에 강하하면서 몽고메리의 야심작 마켓 가든 작전이 시작됐다. 작전 목표는 네덜란드의 많은 운하와 강을 가로지르는 150㎞에 이르는 노상의 교량들을 점령, 영국군의 진격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공수부대는 적 후방에서 미리 교량을 확보하고 영국 30군단의 기갑부대들이 진격해 이를 인계받을 예정이었다.

작전은 초반부터 예기치 않은 여러 난관에 부딪쳤다. 101공수사단 지역에서는 독일군이 교량 하나를 폭파시키는 데 성공했고 82공수사단은 강한 저항에 부딪쳐 네이메겐의 교량을 즉각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깊숙이 아른헴에 투입된 영국 1공수사단은 사단 주력이 독일군에 차단된 채 프로스트 중령이 이끄는 1개 대대만이 라인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사수하고 있었다. 이틀 만에 아른헴에 도달하겠다던 30군단의 계획은 형편없이 틀어졌다.

프로스트의 대대는 탄약과 식량이 떨어져서도 81시간이나 버텼으나 영국군 전차들이 아른헴 남쪽 15㎞까지 도달한 9월21일 새벽 5시에 항복하고 말았다. 후일 ‘머나먼 다리’라고 불린 이 마지막 교량 하나를 장악하지 못해 마켓 가든 작전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며 아른헴에서 분전한 영국 1공수사단은 8000명의 병력이 죽거나 포로가 됐다.

몽고메리로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승부수로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작전이었고 실제로 작전은 거의 성공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그는 승자로서의 도취감에 사로잡혀 길고 좁은 진격로에 대한 독일군의 측면 위협 가능성을 무시했다. 실제 스헬데 하구에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독일 15군의 7개 보병사단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몽고메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이들 사단의 증원을 차단할 수 있었으나 이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이 영국군의 보급로를 위협, 30군단의 진격은 끝내 저지됐다.

용병에 있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승리의 기운에 도취돼 잠재된 적의 위협에 대비하지 않을 때다. 몽고메리 또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까지 이어지며 무수히 많은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채승병 전사연구가〉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9. 1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