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이 전사하면 위장을 처형하고, 위장이 전사하면 부장을 처형한다. 오장을 잃었으면 그 오졸을 처형한다.”

조선 전기의 기본 병법서였던 ‘오위진법’(五衛陣法)의 내용 중 일부다. 요즈음식으로 말하면 군사령관이 전사하면 군단장을, 분대장이 전사하면 분대원들을 처형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규정이다.

오위진법에는 구체적인 전투 대형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있다. “방패를 든 팽배수가 진형의 제일 앞에 서고, 그다음은 총통수·창수·검수·궁수 순으로 포진한다”는 구절이 그것.

화약 무기를 운용하는 총통수를 두 번째 열에 배치하는 등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오위진법은 전투를 수행하는 방법과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 등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병서(兵書)다.

오위진법은 조선의 제5대 왕인 문종(재위 1450~1452)의 주도 하에 쓰인 책으로 1451년 6월 처음 간행됐다.

조선 초기 정도전의 ‘진법’이 간행된 이후 세종(1397~1450) 재위 시절 ‘진도지법’ ‘계축진설’ 등 병서가 연이어 간행됐으나 당시의 군 편제와 일치하지 않거나 일부 내용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는 등 한계가 있었다.

또 이들 병서는 기본적으로 중·소 규모 부대에 적합한 전술을 담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결국 좀 더 완성도 높은 병법 서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위진법’이다.

오위진법의 본문은 문종이 직접 썼으며 훗날 세조(1417~1468)가 된 수양대군이 서문을 쓰고 간행 과정을 총괄했다. 교정과 각주 작업에 공조판서 정인지, 병조참판 황수신 등 여러 문무 신료가 참가했다. 정도전 개인이 지은 ‘진법’과 달리 ‘오위진법’ 편찬은 범국가적 사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실록을 보면 간행 과정에서 문종과 수양대군이 병법 토론을 나누는 장면도 기록돼 있다. 군신(君臣)이 혼연일체가 돼 국방 태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음을 오위진법 편찬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문종의 사망 이후 ‘소자진서’ ‘대자진서’ 등의 이름으로 몇 차례 개정판이 발행됐다. 현재 전해 오는 오위진법 판본은 성종 23년(1492) 무렵 완성된 것이다. 이 판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돼 있다. 이후 오위진법은 임진왜란 발발 이전까지 조선군의 가장 기본적인 군사 교범으로 사용됐다.

오위진법에는 곡진·예진·직진·방진·원진 등 다섯 가지 기본 진형 그림이 게재돼 있으며 장사진·학익진·언월진·어린진·조운진 등 좀 더 복잡한 응용 진형을 펼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또 오위진법에는 지휘·통솔에 사용하는 교룡기·초요기 등 신호용 깃발 등의 그림과 사용법도 실려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 해전 당시 초요기를 올리면서 전투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안위를 꾸짖었던 사건은 유명하다. 오위진법을 보면 초요기는 예하 장수를 소집하는 데 쓰는 깃발이라고 설명돼 있다. 이순신 장군도 오위진법의 규정에 따라 지휘했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9. 2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