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반복되는 사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의 전장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싸우면서도 전훈을 살리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 패배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400년의 세월을 넘어 지중해의 요충지 몰타에서 반복된 역사가 또 그러했다.

16세기의 몰타는 유럽을 지키는 전초 보루였다. 오스만투르크는 1565년 5월18일 3만8000의 병력을 몰타 섬에 상륙시켜 고작 600여 명에 불과한 성 요한 기사단 기사들로 구성된 방어 병력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군은 20배가 넘는 병력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지휘관이 갈등을 빚은 탓에 효과적으로 공격하지 못했다. 오스만투르크군은 4개월 동안 20%에 이르는 큰 피해를 입었고 공격은 지지부진했다. 마침내 9월8일 시칠리아에서 8000명의 원군이 도착하면서 몰타의 성 요한 기사단은 승리했다. 남유럽을 오스만투르크의 손아귀에서 구해 낸 것.

1941년의 몰타는 성 요한 기사단의 자리에 영연방군이, 오스만투르크 자리에 이탈리아·독일이 있었을 뿐 많은 점에서 비슷했다. 북아프리카 전역 내내 몰타는 영국 불침 항모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유감 없이 과시했다.

영국은 몰타 섬의 해·공군 기지를 활용,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향하는 독일·이탈리아의 추축국 보급 선단을 타격했다. 1941년 가을 상황은 악화돼 추축군은 출항한 보급 선단의 60% 이상을 잃고 보급 소요량의 20% 정도만을 수령할 수 있었다.

1941년 12월 독일군은 대대적인 몰타 고사 작전에 들어갔다. 소련에서 철수한 제2항공군단을 투입하면서 압도적인 공군력을 활용, 몰타 전역에 맹폭격을 가했다. 그 덕에 북아프리카로 향하던 추축군의 보급품도 99.2%가 온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몰타에 대한 단호한 작전이 필요했다. 그러나 추축군의 지휘관들은 저마다 다른 계산에 몰두했다. 이탈리아 지도자 무솔리니와 독일 남부전구사령관 케셀링은 이탈리아 공수 부대를 이용, 몰타를 점령하기 바랐다. 반면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휘하던 독일의 로멜 장군은 몰타를 제쳐 두고 이집트 진격에 힘을 실어 주기를 바랐다. 독일의 지도자 히틀러는 우왕좌왕하다가 끝내 몰타 공격을 연기시키고 공군을 이집트로 돌려버렸다.

이 결정으로 독일 공군 주력이 물러난 사이에 영국은 몰타에 전투기와 탄약·연료를 보급했고 더더욱 강력한 요새로 거듭났다. 원기를 회복한 몰타 섬의 영국국은 다시 추축군 보급 선단을 괴롭혀 북아프리카 전역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16세기의 오스만투르크군이 지휘관들의 분열 탓에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배했듯이 20세기의 추축군 또한 여러 지휘관의 의견 충돌 속에 몰타를 적시에 공격하지 못해 전략적 패배를 자초했다. 뼈아픈 역사의 반복이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9. 2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