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기는 틈새를 비집는 지략과 결단은 역사의 흐름을 돌려놓는 중요한 원천이다.

1759년 천혜의 조건에서 수비에 임하던 퀘벡의 프랑스 수비군은 아무도 예상치 않은 디아망 곶으로부터 절벽을 기어오른 영국군에 패배했다.

그로부터 195년 후 프랑스군은 빈약한 월맹군을 손쉽게 방어하리라 믿었던 디엔비엔푸에서 또 한 번 참담한 패배를 맛봐야 했다.

1953년, 월맹의 격화되는 공격에 맞서기 위해 프랑스군은 북베트남 요지를 요새화하고 있었다. 그해 초 나산에서 벌어진 격전에서 월맹군을 격퇴한 나바르 장군은 전훈을 살려 보다 방어에 유리한 곳에 진지를 펴고 적을 유인해 결정타를 가하려 했다. 그 결과 선택된 전장이 디엔비엔푸였다.

1953년 11월20일, 9000명의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에 투입돼 방어 거점 건설을 시작했다. 월맹군은 완전히 기습당했으며 프랑스군은 큰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닷새 만에 임시 활주로를 완성했다. 12월까지 디엔비엔푸에는 경전차와 야포로 지원되는 강력한 거점들이 생겨났다. 프랑스군은 방어진을 순조롭게 확장해 나갔고 병력은 1만1000명으로 증강됐다.

반면 분지 지형의 디엔비엔푸를 둘러싸는 여러 감제고지(瞰制高地)에 대한 장악은 지지부진했다. 이에 곧바로 투입된 월맹군 2개 사단의 선견대는 일부 고지를 확고히 점령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이 존재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고지군은 밀림 지대로 대규모 병력이 투입되기도, 중화기를 이동시키기도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월맹군이 얼마간의 중화기를 투입한다고 해도 우세한 공군과 포병을 이용, 쉽게 포착해 격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래잖아 깨졌다. 월맹군은 5개 사단을 투입해 디엔비엔푸 외곽을 서서히 조여들어오고 있었고, 태평양 전쟁 때 노획한 산포가 디엔비엔푸 여기저기로 포탄을 날려댔다. 위력은 크지 않았지만 산발적으로 날아오는 이 포를 포착, 제거하기 위해 프랑스군은 주변 고지를 뒤지고 폭격했으나 헛수고였다. 그 사이 중국 군사 고문단의 조기 공격 주장을 거부한 월맹의 보응 웬 지압 장군은 야포를 고지로 끌어올리고 탄약을 비축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전투는 1954년 3월13일 맹렬한 예비 포격으로 시작됐다. 첫날만도 9000발이 넘는 포탄이 떨어지면서 2개 거점이 함락됐고 주요 지휘관이 전사했다. 포병지휘관이던 피로 대령은 적 포병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수류탄으로 자살했다. 대공 포격에 공수 보급도 난관에 빠지고 참호를 파며 진격해 오는 월맹군에 비행장과 거점이 차례로 함락되며 프랑스군은 수세에 몰렸다. 마침내 지압은 5월1일 최후의 총공격을 명령했으며 1주일 후 2만5000명의 월맹군은 남은 3000여 명의 프랑스군을 쓸어버리고 항복을 받아 냈다.

디엔비엔푸는 프랑스군의 상식이 이를 뛰어넘는 월맹군의 기지에 패한 전투였다. 프랑스군이 일찍부터 월맹군의 중화기 증원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감제고지 장악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였다. 적을 얕보고 의외의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패배의 원인이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 전례라 할 수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0. 1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