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구에 위치한 계명대에서 열린 고서(古書) 전시회를 찾은 학자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름만 전해 오던 보물급 옛날 책들이 무더기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때 공개된 책 중에는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사진)도 있었다. 이 책은 ‘무예제보’와 마찬가지로 이미 사라진 책으로 간주돼 왔기 때문에 학계·무술계의 충격과 기쁨은 더욱 컸다. 1993년 ‘무예제보’의 재발견에 뒤이은 큰 경사였다. 문화재청도 ‘무예제보번역속집’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 2001년 8월1일 보물 제1321로 지정했다.

1598년에 간행된 ‘무예제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예 서적인 만큼 부족함이 없지 않았다. 우선 검법 중 가장 중요한 일본의 검법, 다시 말해 왜검(倭劒)이 빠져 있다. 무예 수련의 기초인 권법(拳法)에 관한 내용도 없다.

조선 시대 군사 훈련을 책임진 훈련도감(訓鍊都監)이 1610년에 발행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은 ‘무예제보’에서 다루지 않은 왜검·권법은 물론 청룡언월도·협도곤 같은 무기의 사용법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예제보’에 빠진 무예를 보완한 것이 바로 ‘무예제보번역속집’인 것이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은 특히 일본 검법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무예 서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은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실전 경험을 통해 파악한 일본의 검법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일본 검법 관련 내용은 우리나라 전통 무술의 바이블로 평가받고 있는 ‘무예도보통지’보다 더 자세하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한다.

‘무예제보번역속집’에 소개된 일본 검법은 다리에 대한 공격법이 나오는 등 스포츠화된 현대 일본 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실전적인 검법을 보여 주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검법이 발달한 나라지만 이를 글과 그림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옛날 자료는 드물다. 그 점에서 ‘무예제보번역속집’은 일본 검법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는 검법 외에 부록을 통해 일본의 풍속, 군대 문화, 선박 제조 방식, 진법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조선 측이 일본의 군사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잘 보여 준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 ‘적국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등 일본에 대한 강한 경계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임진왜란의 처절한 경험이 ‘무예제보번역속집’을 편찬케 한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은 임진왜란 직후 병법과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한 국왕 선조의 지대한 관심 속에 편집이 시작됐다. 하지만 완성되기 전 선조가 승하, 결국 그의 아들 광해군이 편찬을 완료시켰다. ‘무예제보번역속집’의 편찬자는 훈련도감의 도청(都廳)을 맡았던 최기남(崔起南)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정확한 저자는 확실치 않다.

전체 60여 쪽 분량의 이 책은 현재 국내에서는 계명대 도서관이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미국의 하버드대 엔칭연구소가 한 권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희귀본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문화재적 가치를 갖고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0. 1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