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서 수세에 몰릴수록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도 작전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쿠르스크 전투 패배는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교훈을 남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흐름이 뒤바뀌고 있던 1943년, 독일은 승리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전으로 인한 피해로 1943년에 전략적 대공세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후방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사이 전선에서는 제한적인 파쇄 공격으로 소련군의 전면 공세를 예방할 계획이었다.

제한 공격의 대상으로 떠오른 곳은 하리코프와 오렐 사이 서쪽으로 150㎞ 돌출된 쿠르스크 지구였다. 독일군은 돌출부 북쪽에서 모델 원수의 9군이, 남쪽에서 호트 상급 대장의 4군과 캠프 기갑대장의 캠프 분견군이 협격해 단시일 내에 이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초 의도와 달리 목표를 너무 거대하게 잡으면서 많은 어려움이 터져 나왔다.

성채(Zitadelle) 작전으로 명명된 공격은 당초 5월4일 개시될 예정이었지만 전력 부족으로 야전 지휘관들은 계속 연기를 요청했다. 작전이 두 달이나 연기되는 동안 독일군은 56만 명의 병력과 2700여 대의 전차를 겨우 집결시켰지만 소련군의 방어 태세는 더욱 강력해졌다. 127만 명에 이르는 방어 병력 외에 57만 명의 예비대가 있었고 전차는 3600대 이상이었다.

7월5일, 작전은 결국 개시됐다. 그러나 독일군은 곳곳에서 엄청난 밀도의 지뢰원과 대전차포 진지에 가로막혀 돌파하지 못했다. 북쪽에서의 공격은 일주일 동안 단 12㎞를 전진하는 데 그치고 멈춰 섰다. 남쪽에서의 공격은 좀 더 성공적이어서 독일군은 강력한 선봉 기갑군단들을 앞세워 소련군 전방위선을 돌파했으나 소련군이 대규모 기갑 예비를 투입하면서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7월12일, 프로호로프카에서 독일 제2SS기갑군단의 300여 대 전차와 소련 제5근위전차군을 주축으로 한 600여 대의 전차가 격돌했다. 독일군은 여기서 전술적인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지속시킬 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련은 이어 오렐 돌출부와 다른 전선에서도 전면적인 역공에 돌입해 독일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결국 다른 전선의 붕괴 위험 때문에 작전은 취소됐고 독일군은 7월24일 출발선으로 되돌아왔다.

쿠르스크 전투는 애초부터 현실적인 능력을 넘어선 무리수였다. 작전 내내 독일군은 전차보다 적의 역습을 막을 보병이 부족, 공세의 탄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기습 효과는 거의 전무했다. 이곳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목표였고 소련군은 최상의 준비로 독일군을 막아섰다. 기갑 전력이 크게 손상된 독일군은 이어진 소련군의 대공세에 시달리다가 가을에 드네프르 강까지 퇴각해야 했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는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욕심이 앞서게 마련이지만 적과 나의 현실을 냉철히 판단하고 가능한 한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쿠르스크 전투는 이러한 원칙을 어겼을 때 다소간의 불리함이 파멸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0. 1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