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사진)는 전쟁에 필요한 무예와 실전 전투 기술을 총망라한 지침서다.

무예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국왕 정조(1752~1800)의 강력한 의지로 발행된 이 책은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白東修) 등의 주관 하에 1790년(정조 14년)에 간행됐다.

우리는 흔히 조선을 무예를 경시했던 문약(文弱)한 시대로 이해하고 조선 왕실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조선 왕실에는 무예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적지 않았다. 소설·영화 ‘영원한 제국’에서 묘사된 것처럼 정조는 신화적인 활 솜씨를 지닌 인물이었다.

정조의 아버지이자 비극적인 최후로 유명한 사도세자도 마찬가지다. 사도세자는 항상 궁궐 뒤뜰에서 무예를 수련했으며 말타기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활 솜씨도 뛰어났다. 사도세자는 무예를 집대성하기 위해 ‘무예신보’(武藝新譜)라는 무술 서적을 집필하기도 했다.

정조는 이런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해 한국·중국·일본의 무예를 집대성, 군대의 전투 기술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를 원했다. 나아가 정조는 이런 책을 통해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는 무예와 전투 기술을 표준화하고자 했다.

정조가 ‘무예도보통지’ 서문에서 “훈련도감·어영청 등 여러 부대의 군사들이 무예를 익힐 때 동작의 차이가 있고 잘못된 부분을 그대로 쫓아 답습하니 작은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정조의 의지를 현실에서 구현한 책이 바로 ‘무예도보통지’다.

중국에도 무예 서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예도보통지’는 동양 3국의 무예를 완벽히 망라했다는 점에서 독자적 가치를 지닌다.

‘무예도보통지’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그림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일본의 전통 무예 서적에도 한두 개 동작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례는 있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처럼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하고 이를 다시 연속 동작으로 묘사하고 있는 책은 전무하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로 이어지는 조선 무예 서적의 최후 완성판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장창·기창·당파·낭선·월도·협도·요도·권법·편곤·마상재 등 총 24개의 실전 전투 기술이 수록돼 있다. 당시 군인들이 이미 널리 익히고 있어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조총 사격과 활쏘기를 제외한 전투 기술 전부를 수록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 시대 군사 서적들은 대부분 현대에 와서는 중요성을 잃었다. 전쟁 양상이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예도보통지’만은 전통 무술 수련가들로부터 바이블 대접을 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200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됐다. ‘무예도보통지’의 영문 번역판인 ‘한국 고대 무술 도해’(Comprehensive Illustrated Manual of Martial Arts of Ancient Korea)는 세계적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별 다섯 개라는 최고 평점을 받을 만큼 독자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이제 한국의 문화유산 수준을 넘어 동양 무예에 관한 권위 있는 참고 서적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0. 1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