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병감’(東國兵鑑·사진)은 고조선 시대부터 고려 말까지 총 37차례에 걸친 대외 전쟁을 정리한 역사서다.

현대적 역사학이 도입되기 이전 우리나라의 역대 전쟁사를 국가 차원에서 정리한 역사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시기별로는 한 무제의 침략을 묘사한 고조선 시대의 전쟁이 1개 항목, 고구려의 선비 토벌 등 삼국 시대 전쟁사가 16개 항목, 고려 시대가 20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고려 시대 전쟁사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다른 고려 시대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책의 최초 간행 연도나 집필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동국병감’에는 서문에 해당하는 발문(跋文)이나 간행 기록인 간기(刊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 ‘동국병감’ 편찬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문종(재위 1450~1452) 시대에 편찬을 시작, 세조 4년(1458) 이전에 편찬이 완료됐다는 사실만 확인이 가능한 상태다.

문종실록 즉위년(1450) 3월11일자를 보면 우리나라 전쟁사를 정리해 오늘의 귀감으로 삼겠다는 의정부의 건의에 대해 국왕 문종이 적극적으로 찬성, 빨리 책으로 엮어 널리 알리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동국병감’은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돼 있다. 규장각의 ‘동국병감’은 1608년 인쇄,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에 보관된 것이며 장서각의 것은 무주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에 보관된 것이다.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에 특별히 보관했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은 책인 것이다.

조선 시대에 ‘동국병감’은 무장들이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간주됐다. 중종실록을 보면 ‘동국병감’에 대해 “우리나라의 형세와 병가(兵家)의 승패가 기록되지 않은 것이 없어 무사들이 마땅히 배워야 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장렬히 산화한 중봉 조헌(趙憲·1544~1592) 선생은 “만약 군을 잘 지휘하고 우리 조상들이 마련한 법도를 잘 지키려면 장수들은 ‘동국병감’을 익히도록 하고 군졸들은 오위진법을 통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동국병감’은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들이 ‘동국병감’을 요구했지만 국왕 선조가 명나라 측에 절대로 ‘동국병감’을 제공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례도 있다. ‘동국병감’을 일종의 국가 기밀로 생각한 것이다.

근대 이후 ‘동국병감’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고전 간행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한 광문회(光文會)는 치욕적인 경술국치(1910년) 다음 해인 1911년 ‘동국병감’을 현대 활자로 인쇄, 널리 보급했다.

‘동국병감’이 수많은 외침을 극복한 우리 역사를 잘 정리한 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진 당시의 조선인들에게 외적의 침략을 물리친 조상들의 단결과 주체성을 널리 알리려 했다는 이야기다. ‘동국병감’은 독립 투쟁에 힘을 보태 주는 정신적 자산이었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0. 2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