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대외 정벌사를 상세히 기록한 희귀 고서(古書)인 ‘국조정토록’(國朝征討錄·사진)은 2003년 9월 처음 발견됐다.

이 책은 당시까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은 책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유출, 손으로 옮겨 쓴 필사본 형태로 한 권이 남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국조정토록’이 발견된 곳은 규장각과 함께 우리나라 고서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이었다.

조선 왕실 도서관의 후신인 장서각은 골동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서적도 정기적으로 구입했는데 과거 구입 도서를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국조정토록’이 확인된 것.

상하 2권으로 된 ‘국조정토록’은 세종 원년(1419) 대마도 정벌부터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토벌전까지 조선 전기에 단행된 총 일곱 차례의 전쟁 기록을 담고 있다. 그중 일본을 대상으로 한 정벌전은 두 차례이며 나머지 다섯 차례는 여진족을 대상으로 한 정벌 기록이다.

특히 삼포왜란을 제외하고는 우리 영토 밖에서 벌어진 대외 정벌전 기록을 주로 담고 있다는 점이 ‘국조정토록’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 책을 발견한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정신문화연구원) 정구복 교수는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기록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전쟁만을 선정, 편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며 “ ‘국조정토록’은 조선 전기 전쟁의 전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긴요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지난 75회 ‘장양공토시전부호도’ 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역사에서 외국에 대한 침략 사례는 없지만 영토 외부에서 진행된 원정 작전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가 압록강·두만강을 넘어 여진족 거주 지역을 대상으로 단행한 원정 작전은 10차례가 넘는다. 그 중에는 최대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작전도 있다. 대마도에 대한 토벌도 두 차례나 단행됐다.

이처럼 조선 왕조는 국경 방어를 위해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공세 작전을 과감히 실시, 영토를 안정적으로 보호하려 했다. 바로 그런 적극적 영토 수호의 역사를 담은 책이 ‘국조정토록’이다.

‘국조정토록’은 정벌의 원인, 지휘 체계, 작전 지시와 명령, 동원된 병력과 군량에 관한 사항, 공격의 과정과 전과, 전후의 포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국조정토록’의 최초 편찬 과정은 불확실하다. 책에 기록된 마지막 전쟁이 삼포왜란(1510년)이고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일본으로 유출된 점으로 미뤄 보아 1510~1592년 사이에 간행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 책의 가치를 눈여겨본 대표적 인물은 광해군(1575~1641)이었다. 광해군은 우연히 ‘국조정토록’을 본 후 그 중요성을 인식, 재간행할 것을 명령하고 사고(史庫)에 보관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통 병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정해은 박사는 “광해군은 명나라의 파병 요청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을 탐독하면서 조선의 입장과 파병 전략을 구상했다”며 “ ‘국조정토록’은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교훈을 일깨워 주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