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난국에서 굳은 의지로 영국을 위기에서 끌어낸 처칠. 그러나 그러한 경륜은 그의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여러 실패를 통해 얻은 값비싼 교훈의 산물이었다. 처칠의 생애에서 가장 뼈아픈 경험이 바로 갈리폴리 전투였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영국은 중동 지구의 불안정한 정세를 타개해야 했다. 이를 위해 해군장관 처칠은 영·불 연합 함대가 곧바로 다다넬즈 해협을 통해 터키 수도 이스탄불로 진격하는 작전안을 내각에서 관철시켰다.

처칠은 영국 지중해함대 사령관 카든에게 해군력만으로 좁은 다다넬즈 해협 양안에 배치된 터키군 해안포대와 요새들을 무력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육·해군 합동 작전이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들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그는 완고했다.

영국은 같은 이유로 반대하던 프랑스 해군도 어렵게 설득, 2월19·25일에 연달아 공격했지만 터키군의 방어 태세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카든 제독이 실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3월18일 2단계 작전에 돌입했으나 16척의 전함 중 5척이 격침 또는 대파됐다. 이에 영국 본국함대사령관 피셔가 항의 표시로 사임하면서 처칠도 책임을 지고 해군장관을 사임해야 했다.

사실 이들의 희생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 치열한 교전 때문에 터키 수비군들은 탄약이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 수비군 지휘를 맡은 독일의 폰 잔더스는 영·불 연합군이 곧이어 육군을 상륙시킨다면 방어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륙을 이끌 영국 중동원정군 사령관 해밀턴은 3월12일에나 임명됐고 해군 단독 작전이 실패하고 나서야 육·해군 합동 작전이 제대로 논의됐다. 결국 영연방의 호주-뉴질랜드군이 주축이 된 상륙군은 4월25일에나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6주의 공백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탄약 부족으로 허덕이던 터키군은 그새 곳곳에서 8만5000명이 넘는 병력을 끌어 모았다. 또 상륙과 동시에 터키군은 인근에 있던 케말 무스타파의 19사단을 필두로 반격에 돌입, 교두보 확장을 저지하고 연합군을 고립시켰다.

이후 3개월간 3차에 걸친 대공세에서 험한 지형의 참호선을 따라 설치된 기관총에 숱한 병사가 죽어 나갔다. 8월에도 3개 사단을 증강해 공세를 펼쳤지만 터키군은 계속 병력을 증원하며 완고히 버텨 냈다.

결국 해밀턴은 해임됐고 후임 먼로는 12월에서 이듬해 1월에 걸쳐 잔여 병력을 철수시켰다. 25만 명의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서도 실패한 갈리폴리 전투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애초부터 해군과 육군이 긴밀히 합동 작전을 펼쳤다면 터키군의 방어망은 뚫을 수 있었다. 처칠의 성급한 욕심 때문에 영·불 연합군은 차례로 실패를 겪으면서도 전력의 축차 투입과 소모를 반복했다. 갈리폴리 전투는 현대의 결정적인 작전을 실행함에 있어 병과 간·군종 간의 원활한 작전 조율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