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들이 독초를 삶은 뜨거운 물을 적의 머리에 부은 것, 청장년이 활로 적의 가슴을 뚫은 것, 어린이와 노인이 돌멩이로 필사의 호국정신을 발휘해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의 전진 속도를 둔화시킨 것, 이 모든 것이 의병의 활동이었다.

이와 같은 의병의 용전(勇戰)으로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했으니 이는 민족사에 빛나는 호국정신의 발현이었다 할 수 있다. 비록 관군은 아니었지만 의병들의 살신보국정신은 군인정신의 정화(精華)이자 민족의 표상이었다. 또 의병은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구국의 민병이었다.

임진왜란(1592~1598)은 우리 민족사에서 백성들이 가장 많은 시련을 겪은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왕인 선조의 피란과 왜군의 서울 입성은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민심은 흉흉해져 갔다. 관군 연합 세력은 경기도 등지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추슬러 민족의 의기와 저력을 보여 준 것이 바로 의병들이었다. 의병들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1910년 한일합병 전후의 의병 운동이 가장 활발했다.

1896년 1월부터 시작된 을미 의병의 봉기는 일제의 야수적 살인극인 명성황후(민비) 시해 사건과 단발령에 의해 촉발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최익현 등 유생들이 일본을 배척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올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자 전국의 유생과 일반 농민들이 봉기, 동시에 무력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국 유생들의 의병 투쟁은 반민족적 관리들을 전율케 했으며 일제의 조선 지배 음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한편 1905년 조선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는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의병 활동은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됐다.

의병 투쟁은 유생·일반 농민뿐만 아니라 천민들까지도 항일 전투 부대를 결성, 일본 군대를 습격하고 매국노 등을 처단했다. 이때의 의병 운동은 일본의 수탈이 극심해지고 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는 것에 자극받아 더욱 활발히 전개됐으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즉, 해산 군인들이 의병으로 합류하고 평민 출신의 의병대장이 등장함으로써 국민 대중 속으로 파급됐으며, 이는 의병 운동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구한말의 의병 활동은 특히 민족의 항쟁 역사에서 볼 때 의의가 매우 크다.

첫째, 당시 의병 활동은 사회 전 계층이 참가한 민족 운동이었다. 항일 투쟁은 당초 유생 중심의 위정척사 운동으로 나타났으나 점차 농민·천민·광부 등 사회 전 계층을 포괄하는 거대한 민족 운동으로 확대돼 갔다.

둘째, 구한말의 의병 투쟁은 적극적인 독립 전쟁의 성격을 띠었다. 구한말의 군대 해산 이후 일제의 가혹한 폭력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자 의병들은 만주·간도로 건너가 민족독립 전쟁을 계승했다. 일제 하에서 우리 민족이 벌인 독립군 운동의 뿌리는 의병 운동인 것이다.

셋째, 의병의 살신성인 자세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음을 주지해야 한다. 자신의 전 재산을 사람 모으는 데 쓴 곽재우, 두 아들과 왜군에 결사 항전한 고경명, 왜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인 700 의사. 바로 의병들의 이러한 헌신과 살신보국적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병은 공통점이 있다. 무기도 변변찮았고 잘 조직된 군대도 아니었다. 또 지휘 계통이나 작전의 개념조차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고향 산천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전부였다. 이름도 없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살신성인을 이룬 애국자였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1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