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독립 이후 여러 차례 치열한 전쟁을 통해 그 입지를 확보했다. 압도적인 열세를 딛고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시나이 반도, 가자 지구, 골란 고원, 요르단 강 서안까지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패배는 아랍 국가들에 씻기 어려운 자존심의 상처였다.

가말 압델 나세르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안와르 사다트는 암울한 이집트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자 절치부심했다. 그의 계획은 주도면밀해 소련의 군사고문단을 추방하고 미국과 여러 서방 국가에 접근, 외교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요새화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를 돌파, 기갑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치밀한 기습 공격 계획을 세웠다.

사다트는 마침내 1973년, 시리아·요르단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의 중요한 명절인 욤-키푸르(대속죄일)이던 10월6일 공격을 결정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내각은 전반적으로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정보 기관들은 소련으로부터 신형 전폭기와 스커드 미사일이 도착한 뒤에야 공격에 나서리라 보고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부정적인 국제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자 국가 방위 전략도 적극적인 선제 예방 공격 전략에서 수세적인 방어 전략으로 다소 후퇴한 상태였다. 9월 말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이 비밀리에 이스라엘을 방문, 전쟁을 경고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6일 전쟁에서 얻은 자신감이 자만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러한 낙관은 이집트·시리아의 기습 공격 앞에 산산이 깨졌다. 이들은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이 예비역 동원에 걸리는 취약한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목표를 빠르게 장악하고 방어한다는 현실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집트군은 전례 없이 신속하게 수에즈 운하 도하를 마치고 이스라엘군의 대안 방벽을 물대포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지 않고 대공 미사일의 방어 범위 내에서 새거 대전차 미사일을 대량으로 설치,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 기갑여단들에 치명타를 날렸다.

이스라엘군은 초반의 충격에서 간신히 헤어 나왔다. 시리아군은 1400여 대의 전차 투입을 통해 이스라엘군 제188기갑여단을 거의 격파했으나 북부의 제7기갑여단의 분전으로 사흘 만에 빠르게 수세로 몰렸다. 시나이 반도에서도 10월15일 샤론 사단이 이집트 제2, 3군의 경계를 통타하며 수에즈 운하 서쪽으로 진출해 이집트 제3군의 배후를 차단했다.

결국 욤-키푸르 전쟁은 유엔과 미국·소련의 외교적 압박을 통해 어정쩡한 상태에서 중지되고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제네바 협상 테이블에서 평화 조약을 맺음으로써 종식됐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만의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했다. 임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집트군의 위협을 과소 평가함으로써 1만 명이 넘는 만만찮은 사상자를 냈으며 내각과 군 수뇌부가 사퇴해야 했다.

외교적 위험이 있는 선제 공격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적절한 방어 태세 정비에 나섰더라면 많은 희생을 피할 수 있었다.

욤-키푸르 전쟁은 전쟁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 현대에도 기습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며 자만으로 통찰력이 흐려져서는 안 됨을 여실히 일깨워 주고 있다.

< 채승병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11. 1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